43조 중고거래 시장, 사이버 분쟁 해결엔 ‘사이버탐정’이 필요하다

    칼럼 / 시민일보 / 2026-07-02 13:5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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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중고거래는 더 이상 알뜰 소비자의 작은 습관이 아니다. 당근마켓, 번개장터, 중고나라를 넘어 인스타그램과 틱톡까지 개인 간 거래의 장터가 되면서 중고거래는 생활경제의 한 축이 되었다. 국내 중고거래 시장 규모가 43조 원에 이르렀다는 보도는 이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시장이 커진 만큼 분쟁도 함께 커졌다. 이제 중고거래 문제는 단순한 환불 다툼이 아니라, 디지털 생활공간의 신뢰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최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개인 간 중고거래 분쟁 해결에 나선다는 소식은 그래서 의미가 크다. 플랫폼이 1차 조정에 나서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KISA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가 분쟁을 넘겨받는 구조다. 소송으로 가기에는 금액이 적고, 방치하기에는 피해가 분명한 생활형 분쟁에 조정 절차가 마련되는 것은 바람직하다. 다만 조정기관이 생겼다고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분쟁 해결의 출발점은 결국 사실관계의 명확한 정리다.

    개인 간 중고거래가 어려운 이유는 판매자와 구매자가 모두 개인이라는 데 있다. 일반 전자상거래에서는 사업자와 소비자 사이의 권리·의무가 비교적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 간 거래에서는 소비자보호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기 어렵다. 판매자는 “분명히 설명했다”고 말하고, 구매자는 “그런 하자는 듣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택배 거래에서는 운송 중 파손인지 원래 있던 하자인지 다투고, 직거래에서는 구매자가 직접 확인했는지가 핵심 쟁점이 된다.

    분쟁 규모도 작지 않다. 2025년 KISA 전자거래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전자거래 분쟁조정 신청은 8,938건이며, 이 가운데 개인 간 거래 관련 분쟁은 5,848건으로 전체의 65.4%에 이르렀다. 전자거래 분쟁 세 건 중 두 건가량이 중고거래 등 개인 간 거래에서 발생한 셈이다. 더 이상 “개인끼리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고만 보기 어렵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기록이다. 판매글에는 어떤 표현이 있었는가. ‘정상 작동’, ‘미사용’, ‘단순 개봉’, ‘생활 흠집’이라는 문구는 실제 상태와 부합했는가. 채팅 과정에서 하자를 고지했는가. 결제 시각, 송장번호, 포장 상태, 개봉 영상, 작동 영상, 하자 발견 시점은 남아 있는가. 사이버 분쟁은 말싸움이 아니라 기록 싸움이다. 기록이 없으면 억울함은 주장에 머물고, 기록이 정리되면 사실은 구조를 갖는다.

    예컨대 고가의 중고 노트북을 택배로 거래했는데, 구매자는 “처음부터 고장 난 물건”이라고 주장하고 판매자는 “배송 중 파손”이라고 맞서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이때 필요한 것은 감정적 항의가 아니라 판매글 문구, 채팅상 하자 고지 여부, 포장 사진, 송장 기록, 개봉 영상, 작동 확인 시점 등을 시간순으로 재구성하는 일이다. 사실조사 전문가는 이를 사건 경과표와 증거목록으로 정리해 KISA 조정이나 법률상담으로 연결할 수 있다. 이것이 피해자 혼자서는 하기 어렵고, 조정기관이 대신해 주기도 어려운 빈자리다.

    사이버탐정은 해커가 아니다. 남의 계정에 침입하거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하거나, 상대방을 사칭해 대화를 유도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이버탐정의 본령은 합법 자료와 당사자가 제공한 디지털 자료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정리하는 데 있다. 판매글 캡처, 채팅 로그, 결제 내역, 배송 기록, 사진과 영상, 플랫폼 신고 이력 등을 시간순으로 배열하고, 쟁점을 분리하여 분쟁조정기관이나 수사기관, 법률전문가에게 전달되도록 구조화하는 역할이다.

    이 역할은 법률대리도 아니고 강제수사도 아니다. 법적 평가, 승소 가능성 판단, 고소장 작성 대행, 합의 대리와 같은 법률사무는 수행해서는 안 된다. 범죄 혐의 판단과 수사는 국가기관의 영역이다. 사이버탐정은 법률적 평가나 법률상담을 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수집·제공된 사실을 보존하고 시계열로 정리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 디지털 시대의 탐정은 ‘무엇이든 알아내는 사람’이 아니라 ‘합법의 범위 안에서 사실을 정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가 「사이버탐정론」과 「디지털AI탐정론」을 중요한 교과목으로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늘의 탐정학은 골목길 미행의 기술에 머물 수 없다. 온라인 거래, SNS 사기, 피싱, 딥페이크, 명예훼손, 플랫폼 분쟁, 디지털 증거보전 등 사이버상에서 발생하는 제반 문제를 이해해야 한다. 두 교과목은 디지털 증거의 특성, 합법적 정보수집의 한계, AI 기반 공개정보 분석, 허위 프로필 식별, 이미지·문서 진위 확인 등 새로운 조사 역량을 교육한다.

    해외도 같은 방향이다. 미국의 대형 온라인 거래 플랫폼들은 물품 설명과 실제 상태가 다르거나 배송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구매자 보호 절차를 운영한다. 유럽연합은 디지털서비스법을 통해 온라인 플랫폼의 책임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은 탐정업무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을 통해 민간조사 영역을 신고제와 감독체계 안에서 관리한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디지털 거래의 신뢰는 플랫폼의 자율성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증거 보존, 민간 전문성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우리도 중고거래 분쟁을 단순한 소액 민원으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이는 디지털 경제의 신뢰 인프라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를 묻는 문제다. 플랫폼은 판매글 표준양식, 하자 고지 체크리스트, 고가 물품의 작동 영상 등록, 안전결제 유도 같은 예방 장치를 강화해야 한다. KISA와 관계기관은 분쟁해결 기준을 생활형 매뉴얼로 확산해야 한다. 여기에 합법적 사실조사 전문가가 결합된다면, 피해자가 조정·신고·상담 등 적절한 절차로 나아가도록 돕는 실질적 보호망이 될 수 있다.

    공인탐정 제도화 논의도 바로 이 흐름 속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 탐정에게 특별한 권한이나 특권을 주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업무범위, 금지행위, 윤리기준, 개인정보보호 원칙, 수임 거절 기준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다. 특히 사이버 영역에서는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를 먼저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불법 심부름센터와 합법적 사실조사 전문가가 구분되고, 국민도 안심하고 민간조사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43조 중고거래 시장의 핵심은 거래 규모가 아니라 신뢰다. 디지털 분쟁의 현장에는 기록을 읽고, 증거를 보존하며, 사실관계를 구조화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 탐정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감시자가 아니라, 합법적 사실조사를 통해 국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사회적 분쟁 해결을 돕는 민간 전문인이다.

    이러한 역할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려면 교육과 자격관리, 윤리기준, 개인정보보호 원칙, 업무범위와 금지행위, 감독체계를 포함한 국가적 제도 설계가 따라야 한다. 법의 부재가 디지털 생활분쟁에서 보호의 부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공인탐정 제도화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43조 중고거래 시장과 디지털 사회의 신뢰를 지키기 위한 시대적 과제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학과장 ▲경찰학박사, 美경영학박사 ▲경찰청 총경 퇴임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연구소장 및 K-탐정단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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