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 계층 재기 위한 빚 탕감, 사각지대 살피되 부작용 보완 맞춤형 지원을

    칼럼 / 시민일보 / 2026-05-14 14: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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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정부가 취약 계층의 재기를 위한 빚 탕감을 주도하면서 이를 떠맡은 정부 기관의 부실이 커지고 있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는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5월 12일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인수해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민간 ‘배드뱅크(Bad Bank)’가 정부의 ‘서민 빚 탕감’ 정책에 참여하지 않아 관련 채무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지적에 “아직도 이런 원시적 약탈금융이 버젓이 살아남아 서민들 목줄을 죄고 있는 줄 몰랐다.”라며 강하게 비판하고 문제 해결을 약속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날 SNS 엑스(X │ 옛 트위터)에 “1,000만 원 빚이 4,400만 원으로, 죽기 전엔 빚 조정 어려워…은행도 상록수 그늘에 숨었다.”라는 제목의 경향신문 기사를 공유하며 “보도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라면서 “지금까지 관할 당국은 왜 이런 부조리를 발견조차 못 하고 있었을까?”라며 “오늘 국무회의에서 해결 방안을 찾아보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제활동이나 기업의 수익 활동에도 정도가 있는 것”이라며 “아무리 돈이 최고라지만,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체 안의 우리 이웃인데 과유불급”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언급한 ‘배드뱅크’는 국내 대형 은행·카드사들이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으로, 은행이 예상치 못한 채무 불이행 위험에 직면한 부채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분리해 우량 자산과 고위험 자산을 격리하고 부실채권 문제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구조다.

    ‘상록수’는 2000년대 초 카드대란 당시 폭증한 부실채권을 관리하기 위해 주요 은행과 카드사가 공동 출자해 만든 유동화전문회사(SPC)다. 현재는 신한카드, 하나은행, IBK기업은행, 우리카드, KB국민은행을 비롯해 대부업체 등이 주요 주주다. 문제는 ‘상록수’ 출자사들이 올해 장기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으로 매각하라는 협조 요청을 받았으나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었다는 지점이다. 신용불량자의 회생 지원을 위해 설립된 ‘상록수’가 정작 이들의 회생 지원을 거부한 셈이다. 금융사가 보유한 연체 채권을 ‘새도약기금’이 매입하면 채무자들이 받는 추심은 즉시 중단되고, 상환 능력이 있으면 채무조정 및 분할 상환 추진, 기초생활수급자 등 상환 능력이 없다면 1년 이내 자동 소각한다.

    국가가 개인의 채무를 조정해 부실채권을 정리하는 건 지극히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상황에 맞게 채무를 조정하면 부실채권에서 기인하는 위험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채무자의 정상적인 경제활동을 도와 경제적으로도 선순환도 꾀할 수 있어 적지 않은 국가들이 채무조정 장치를 두고 있는 배경이다. 방식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개인회생이나 파산ㆍ면책과 같은 ‘사법형 채무조정’이고, 둘째는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워크아웃과 같은 ‘협약형 채무조정’이며, 셋째는 정부 또는 공공기관이 기금을 조성해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한 후 소각하거나 일정 비율로 (채무자의) 원금 등을 감면해 주는‘공공기금형 채무조정’이다.

    국제적으로는 ‘배드뱅크(Bad Bank)’라고도 하는데 스웨덴이 1992년 설립한 세쿠룸(Securum)과 레트리바(Retriva), 미국이 2008년 운영한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 아일랜드가 2009년 설립한 국립자산관리기구(NAMA)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들 ‘배드뱅크(Bad Bank)’의 특징은 ‘금융기관의 건전성 제고’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기금을 조성하기 때문에 앞서 두 방식과 달리 정부 재정을 투입한다. 그래서 개인 채무가 아닌 금융기관의 부실을 해소할 필요가 있을 때 예외적으로 활용하는 게 일반적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우리나라에선 ‘배드뱅크(Bad Bank)’를 ‘개인 채무자의 부실채권 처리’에 활용한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 카드대란으로 신용불량자가 급증하자 노무현 정부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산하에 2004년‘한마음금융’과 2005년‘희망모아’를 설립해 부실채권을 직접 매입해 처리한 데에서 시작됐다. 이어서 이명박 정부의 ‘신용회복기금’, 박근혜 정부의 ‘국민행복기금’, 문재인 정부의 ‘장기소액연체자지원재단’, 윤석열 정부의 ‘새출발기금’, 이재명 정부의 ‘새도약기금’ 등으로 줄을 이은 모두가 개인 채무자의 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배드뱅크(Bad Bank)’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개인파산ㆍ회생 제도는 이처럼 여러 차례를 거쳐서 개선을 시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고 낙인 효과도 크다. 그래서 법원을 통한 사법형 채무조정이 흡수하지 못한 사각지대(死角地帶)를 ‘배드뱅크(Bad Bank)’가 메우는 측면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정치적 수요도 무시할 수 없었음도 주목해야 한다. 채무조정은 국가 재정을 거의 동원하지 않으면서도 가시적인 수혜자를 많이 창출해 선거 공약으로 쓰임새가 높았다. 그러다 보니 상시적ㆍ제도적 해법인 사법형ㆍ협약형 채무조정 제도보다 ‘신용 대사면’과 같은 일회성 이벤트가 선거철마다 매번 반복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 KAMCO)는 지난해 소상공인·자영업자의 채무 재조정 프로그램인 ‘새출발기금’으로만 1조 4,000억 원가량 손실을 냈다. 캠코는 2조 4,000억 원을 ‘새출발기금’에 출자했는데 빚을 못 갚은 자영업자가 늘면서 시장가치가 1조 35억 원으로 줄었다. 정부 대신 ‘포용 금융’ 부담을 떠안은 캠코(KAMCO)가 급속히 부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캠코(KAMCO)의 지난해 말 기준 부채는 12조 7,350억 원으로 전년 대비 27% 급증했다. 취약 계층의 재기를 위해 5,000만 원 이하 7년 이상 장기 연체 채권을 소각하는 이재명 정부의 ‘새도약기금’이 출범했지만, 23년 전 카드대란 당시 발생한 9만 명의 7,000억 원 상당 연체 채권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주요 금융사들이 설립한 민간 부실채권 처리회사 ‘상록수’는 이와 같은 연체 채권을 캠코(KAMCO)의 ‘새도약기금’으로 넘기지 않고 보유하면서 5년간 420억 원가량의 배당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포용 금융’을 강조하고 있지만 금융기관들이 ‘잇속’을 위해 20년 넘게 취약 차주를 ‘빚의 굴레’에 밀어 넣고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새도약기금’이란 이재명 정부의 금융당국과 캠코(KAMCO)가 7년 이상 연체되고 5,000만 원 이하의 무담보 채권을 매입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율 협약에 참여한 금융회사가 보유한 연체 금융채권을 대상으로 한다. ‘새도약기금’이 연체 채권을 매입하면 추심은 즉시 중단된다. 상환 능력이 있으면 채무조정 및 분할 상환 추진, 기초생활수급자 등 상환 능력 상실 시 1년 이내 자동 소각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12일 ‘상록수’가 보유한 장기 연체 채권을 캠코(KAMCO)의 ‘새도약기금’으로 일괄 매각하기로 하는 한편 ‘새도약기금’ 대상이 아닌 채권도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상록수’의 청산으로 약 11만 명(금액 8,450억 원)의 장기 연체 채무자가 장기 추심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장기 연체 채권 전수조사에도 나설 방침이다. 부실채권 처리 업계에 의하면 ‘상록수’ 외에도 장기 연체 채권을 보유하고 빚 독촉을 하는 특수목적법인(SPC)이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한 대형 금융사 계열사인 부실채권(NPL) 투자사나 대부업체 등에는 장기 연체 채권이 추가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실채권 처리회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무담보 부실채권을 유동화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전수조사하면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현재 금융사가 지분을 보유하고 장기 연체 채권 추심에서 이익을 얻는 행태가 추가로 있는지 조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당장은 정확한 규모를 파악하지 못했다. 이에 따른 금융당국 책임론도 제기된다. 애초 ‘상록수’가 주요 금융사들이 출자해 다중 채무자들에게 신용 회복 및 경제적 재기 기회를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가 최초 출자사들이 지분을 팔고 나가면서 추심 업체로 변질되는 동안 금융당국이 무관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엇보다 ‘상록수’가 최초 만들어졌을 때 목적을 생각해 금융위원회가 명확한 방향성을 분명하게 제시했어야만 했다. 과거 2013년에도 ‘장기 연체 빚’ 탕감 정책이 시행됐는데 그동안 금융당국이 이와 같은 민간 ‘배드뱅크(Bad Bank)’를 방치한 것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경향신문 보도를 종합하면 2021년부터 2025년까지 5년간 ‘상록수’가 가진 후순위채 상환금액은 총 794억 5,000만 원이었으며, 5년간 총 배당액은 420억 5, 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지분(출자 비중)이 30%로 가장 높은 신한카드의 경우 지분비례 배당 가정하에 약 126억 원의 배당액을 받아 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추심업체인 ‘MG 신용정보’에서도 매년 추심 수수료로 연간 15억 원, 연간 3,000~5,000만 원 수준의 성과 수수료도 합해 약 79억 원을 챙겼다. 연간 수십억 원 수준인 ‘MG 신용정보’ 영업이익 상당수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통상적으로 무담보 채권의 경우 대체로 20년 이내에 소멸시효가 도래하지만, ‘돈 되는 장사’가 되면서 ‘상록수’는 후순위채 만기를 두 차례 연장해 운영 기간을 2027년까지 늘렸다. ‘새도약기금’에 채권을 매각해도 세제상 이득과 일정 부분의 매각 이익도 얻을 수 있지만, ‘상록수’ 회수를 통해 받을 이득이 더 컸다고 판단했던 셈이다.

    한편 금융위원회가 지난 1월 8일 ‘포용적 금융 대전환’ 회의를 통해 내놓은 대책은 이재명 대통령이 강조한 ‘사람을 살리는 금융’을 구체화한 것이다. 저소득, 저신용자를 위한 ‘햇살론 특례 보증’ 금리는 기존 15.9%에서 최대 6%포인트 낮췄다. 불법 사채로 빠지지 않도록 ‘불법 사금융 예방 대출’ 금리도 기존 15.9%에서 5∼6%대로 인하했다. 돈을 성실히 갚아 신용을 쌓으면 정책서민금융을 졸업하고 은행권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금융 사다리를 제도화하기로 한 것이다. 한번 삐끗하면 벗어나기 힘든 빚의 수렁에 빠진 취약 계층의 재기를 돕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일임은 불문가지(不問可知)이다. 특히 물가와 집값 상승, 취업난 등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자마자 빚부터 져야만 하는 청년들에 대한 지원은 꼭 필요한 정책으로 반드시 실행되어야만 한다. 하지만 저신용자의 부담 경감에만 신경을 쓰다 보면 고신용자의 금리가 오히려 높아지는 ‘금리 역전 현상’이 발생해 역차별이 생길 수도 있다. 채무조정·탕감이 반복되면 ‘돈을 안 갚고 버티면 된다.’라는 식의 ‘도덕적 해이(道德的解弛 │ Moral hazard)’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신용 시스템의 근간을 흔들지 않도록 정교한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최근 감사원 감사 결과 캠코(KAMCO)는 ‘새출발기금’ 지원 대상 중 월 8,000만 원 소득자, 코인 4억 원 소유자 등 상환 능력이 충분한 사람까지 채무 840억 원을 감면해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가운데 20여 년 전 카드 사태 당시 대출 연체자 지원을 위해 설립한 민간 ‘배드뱅크(Bad Bank)’인 ‘상록수’가 주주 반대를 이유로 장기 연체자 채무조정 프로그램인 ‘새도약기금’ 참여를 미루면서 사각지대가 발생했다. 정치권은 ‘포용 금융’ 확대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포용 금융’ 확대를 위한 「서민금융기금 설치법」 논의에 착수했다. 서민금융진흥원에 정부 예산과 민간 은행 출연으로 별도의 기금을 설치해 서민금융의 안정적인 재원을 마련하는 법이다. 여·야는 이날 회의에서 법안 취지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기금의 규모 등에서 이견을 보여 조금 더 논의하기로 했다.

    빚의 덫에 걸린 소상공인·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주는 조치는 의당 필요하다. 역대 정부마다 저신용자를 위한 대출 확대나 이자 감축, 부채 탕감 정책을 내놨지만 효과는 별무(別無)하고 그다지 오래가지도 못했다. 근본적으로 취약 계층의 자립을 돕기보다는 빚으로 빚을 막는 돌려막기 대응에 그쳤을 뿐이다. 과거에 정부에서 연체 기록을 삭제해 준 채무자 3명 중 1명이 3, 4년 만에 다시 연체자가 됐다는 분석도 있다. 돈을 싸게 많이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를 통해 돈을 벌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법이다. 무엇보다 무분별한 탕감이 반복되면 시장 원리가 흔들릴 우려가 매우 크다. ‘버티면 빚을 없애 준다.’라는 잘못된 신호는 성실하게 빚을 갚아 온 대다수 채무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길뿐만 아니라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가능성만 당연히 커진다. 특히 기업 활력 회복을 위해서는 투자와 지원을 하고 혁신에 따른 성장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할 필요가 화급(火急)한 급선무(急先務)다. 지금은 20년도 넘은 장기 연체 채권을 정리하고 경제적 취약 계층의 재활을 돕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무엇보다 20년 넘도록 신용불량자로 살았다면 일상에서 당연히 엄청나게 많은 불편을 겪었을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의당(宜當) ‘상록수’와 유사한 사례가 있는지 더욱 면밀하고 치밀하게 파악하고 재활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사회적으로도 바람직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취약 계층 지원 취지는 최대한 살리되 부작용을 보완해 상환 능력에 비례한 맞춤형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포용 금융’의 정교한 설계와 엄정한 집행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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