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삐 풀린 환율 고공행진, 고물가 등 실물경제 충격 원천 차단해야

    칼럼 / 시민일보 / 2025-11-25 14:21:26
    • 카카오톡 보내기

     
    박근종 전 서울특별시자치구공단이사장협의회 회장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치솟으며 외환시장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최근 고공 행진하던 환율은 1,470원대마저 뚫으며 1,500원 턱 밑까지 바짝 다가섰다. 지난 11월 24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오후 3시 30분 기준 원·달러 환율은 6거래일 연속 상승하면서 전 거래일보다 1.5원 오른 1,477.1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이는 미국발 관세전쟁이 본격화됐던 지난 4월 9일(1,484.1원) 이후 7개월 반 만에 최고치다. 이렇듯 달러 강세가 장기화하면서 원화 실질 가치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대외 불확실성과 수급 문제가 원화 가치를 끌어내렸는데, 문제는 최근 원화 약세의 흐름이 이전 양상과는 크게 다르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원화 약세의 구조적 요인이 큰 데,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경우 고물가는 물론 고금리 등 악순환으로 이어져 실물경제에 큰 타격이 우려된다. 정부는 급기야 지난 11월 24일 원·달러 환율 급등세에 ‘큰손’인 국민연금과 협의체를 구성,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공조 체제를 본격화했다. 환율은 지난 10월 초 1,400원대에 진입한 이후 가파르게 오르면서 한 달 반 만에 1,500원을 위협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주에도 외국인의 증시 추가 매도 여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금리 인하 시그널(Signal) 등을 주요 변수로 꼽으며 1,490원대까지 가능성을 열어놓은 상태이다.

    최근 환율이 급등한 것은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한 데다, 원화와 동조성이 높은 엔화 가치도 약세를 보이는 등 대외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투자 확대, 관세 협상에 따른 대미 투자 등 자금 유출에 대한 구조적 요인의 이유가 컸다. 특히 경상수지 흑자 등 달러 유입과 외국인의 국내 증시 투자에도 불구하고 해외 증시 투자를 위한 달러 환전 수요가 더 크다는 점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통상적으로 증시가 올라가게 되면 환율은 내려가고 경상수지 흑자가 이어지면 환율은 하방 압력은 받지만, 최근엔 이 같은 공식이 깨졌다. 실제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9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대외금융자산은 2조 7,976억 달러로 1,158억 달러 증가했다. 반면 외국인의 국내 투자 규모를 의미하는 대외금융부채는 1조 7,414억 달러에 그쳤다. 전 분기 대비 900억 달러 증가했지만 자산 증가 폭에는 미치지 못하면서 해외 투자를 위한 달러 수요 급증이 원화 약세를 초래하고 있단 분석이다. 여기에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환전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원화 약세 요인으로 꼽힌다.

    이처럼 원화 약세가 가파르면서 원화의 실질 가치도 추락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0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은 89.09로, 한 달 전보다 1.44 포인트 하락했다. 12·3 비상계엄 여파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컸던 올해 3월(89.29)보다 낮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던 1998년 수준(86.63)과 비교해도 크게 높지 않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8월(88.88) 이후 16년 2개월 만에 최저 수준이기도 하다. 실질실효환율은 국가별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주요 교역 상대국 통화와 비교해 나타내는 지표로 2020년을 기준(100)으로 100 미만이면 해당 통화의 가치가 낮다고 본다. BIS 통계에 포함된 64개국 중 한국은 일본(70.41), 중국(87.94)에 이어 세 번째로 낮고, 한 달 하락 폭(-1.44 포인트)은 뉴질랜드에 이어 두 번째로 컸다.

    문제는 고환율 흐름이 수입 물가와 생산자물가에 추가적인 상승 압력을 키우면서 물가 불안을 야기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10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0.82(2020년=100)로 전월 대비 0.2% 상승하며 두 달 연속 올랐다. 고환율 영향이 기초 물가 지표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의미다. 생산자물가 상승 배경은 고환율로 수입 원재료 비용이 늘어난 데 있는데, 결국 제조·서비스업 전반의 생산 비용을 높여 공산품·가공식품·중간재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수입 물가도 4개월 연속 상승했다. 10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보다 1.9% 오른 138.17로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폭을 기록했다. 수입 대부분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환율이 오르면 국제 가격 변동이 없더라도 원화 기준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 에너지·광물·곡물 등 원재료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환율의 영향은 더 즉각적으로 반영됩니다. 수입 물가는 수개월간의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가격에 반영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소비자 부담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금리도 우상향하고 있다. 서울 채권시장에 따르면 지난 11월 21일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연 3.271%로 거래를 마쳤는데, 4월 말 금리인 2.563%와 비교하면 0.7%포인트 이상 상승했다. 국고채 금리 상승은 은행채 금리를 끌어올린다. 실제 은행채 1년물 금리는 지난 8월 14일 2.498%에서 지난 11월 21일 기준 2.791%까지 올랐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정작 시장금리는 치솟은 것이다. 시장에서는 단기적으로 환율이 하락할 뚜렷한 요인이 없다고 보고 머지않아 1,500원 선도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일본 등 주요국 통화에 비해서도 원화 가치 하락 폭이 유독 커서 ‘환율 판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평가까지 나온다. 연평균 환율은 1,416.46원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1,394.97원)을 한참 웃도니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은 국가신인도 하락이나 외환위기를 걱정할 수준까지는 아니라지만 긴장의 끈을 늦춰서는 결코 안 된다. 고환율은 물가앙등을 자극해 간신히 살아나고 있는 내수에 찬물을 끼얹고 서민과 취약계층의 삶도 팍팍하게 만든다. 환율 상승이 수출에 호재지만 원자재와 중간재 수입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생산비용 증가로 채산성이 나빠질 수 있다. 고환율을 오래 방치하다가는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이 동반 침체의 늪에 빠져들 수 있다.

    급기야 외환 당국인 기획재정부는 지난 11월 24일 환율 급등에 대응하기 위해 관계기관 간 협의체를 공식 가동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 한국은행, 국민연금은 이날 첫 실무회의를 열고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 확대가 외환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출범시켰다. 정부가 금리와 통화·재정 정책 등을 두루 점검하는 한편 환율 상승의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다하는 건 당연하다. 다만, 국민연금공단 동원은 경계해야 할 일이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로 환율이 급등하자 외환 당국과 통화스와프, ‘환 헤지(Foreign Exchange Hedge │ FX Hedge │ 현재 시점의 환율에 미리 고정하는 것)’ 등을 통해 원·달러 환율 하향 안정화에 기여를 한 바 있다.

    하지만 단기 대응에 매달리기보다 구조개혁으로 한국 경제의 투자 매력도를 높이는 게 근본적인 처방이다. 국민연금은 올 8월 말 기준 총 운용자산 1,322조 원 가운데 58.3%를 해외 주식·채권에 투자하는 큰손이다. 국민연금은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환 헤지를 최소화하고 해외 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국내 외환시장에서 조달하는데 이는 원·달러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이날 4자 협의체에서도 국민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환 헤지’ 기준·비중 변경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나라의 경제 상황을 반영하는 환율이 오르는 건 심상찮은 신호인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국민들은 가만히 앉아 원화 표시 자산이 떨어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환율 상승은 수입품 가격을 올려 장바구니 물가까지 자극한다. 해외여행 경비나 유학비도 불어난다. 기업들도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익성을 장담할 수 없다. 정부가 환율안정 총력전을 펴야 하는 이유다. 당장 발등의 불은 가용수단을 동원해 환율 급변동을 막는 일이다. 환율 불안이 실물경제로 확산하지 않도록 정교한 선제 대응도 필요하다. 하지만 단기 처방만으로는 환율안정을 기약하기 어렵다. 우선 외환 방파제를 높이 쌓는 게 급선무(急先務)다.

    정부는 얼마 전 한·미 관세 협상 타결로 외환보유액을 헐어 해마다 최대 200억 달러를 대미(對美) 투자에 써야만 하는데 환율 대응 여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200억 달러로 GDP 대비 약 23% 수준이며, 대만은 GDP 대비 80%가 넘는 6,000억 달러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고 있다. 여건이 허락할 때마다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통화스와프 협정도 확대해야 할 것이다. 근본 해법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경제체질을 확실히 바꾸는 것이다. 정부는 돈 풀기를 자제하고 규제 완화와 구조개혁에 속도를 내야만 한다.

    이번에 환율이 오른 건 이전과는 원인이 다르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외환위기 당시엔 달러가 없었지만, 지금은 경상수지 흑자로 달러는 어느 정도 여력이 있다. 그럼에도 워낙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서학개미’들이 많다 보니 달러 수요가 커진 게 환율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순대외금융자산은 1년 새 무려 120조 원이나 증가했다. 국민연금도 국내보다 해외 투자의 기대 수익률이 더 높다면 그 비중을 늘리는 게 합리적인 결정일 것이다. 지금은 ‘서학개미’들이 다시 국내 증시로 돌아올 수 있도록 투자 환경을 개선하는 게 더욱 중요하다. 경쟁력이 한계에 다다른 산업은 구조개혁을 서두르고, 인공지능(AI)과 미래 성장 산업에 대한 투자와 지원으로 한국 경제에 대한 매력도를 높여야만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 동원 같은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환율안정 대책을 찾아야만 한다. 국민연금의 팔을 강제로 비틀어 가면서까지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늘리거나 전략적 ‘환 헤지’ 강화를 요구한다고 해결될 일이 결단코 아니다. 단기적인 환율안정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정공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환율 방어를 위해 국민연금이 무리하게 개입하면 환율 변동으로 수익률 저하 또는 국내 투자 손실 위험 등의 우려도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 완화로 경제 활력을 높이고 기업의 국내 투자를 유도해 생산성과 경쟁력을 키워야만 한다. 우리 기업들이 강해져야만 고환율 불안이 고물가 등 실물경제 충격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