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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3일 새벽 전격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했다.
두 사람은 이날 오전 8시 국회 소통관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서서 “'더 좋은 정권교체'를 위해 뜻을 모으기로 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함께 만들고자 하는 정부는 미래지향적이며 개혁적인 '국민통합정부'라고 소개했다.
일단 국민 다수가 바라는 ‘정권교체’의 길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에서 두 사람의 단일화를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보다 반가운 소식은 '더 좋은 정권교체'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단순히 더불어민주당에서 국민의힘으로 권력이 넘어가는 형태의 ‘정권교체’에 그치지 않고 나아가 ‘정치교체’까지 이루겠다는 두 사람의 의지가 엿보인다.
그러면 두 사람이 의기투합한 ‘정치교체’라는 건 뭘까?
한마디로 그동안 집권당과 제1야당이 ‘적대적 공생 관계’를 통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하던 패권 ‘양당제’ 시대를 종식하고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권에 반영되는 ‘다당제’ 시대를 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안철수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거듭 “다당제가 제 소신”이라며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당제는 단독 과반을 가진 여당 또는 야당으로 인해 벌어지는 극단적인 갈등의 정치를 끝내고 소수 야당과의 협치를 가능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다. 여당이 단독 과반을 가질 수 없기에 필연적으로 소수 정당과 협치를 할 수밖에 없으며, 제아무리 힘이 센 제1야당이라고 해도 막무가내로 발목잡기만 할 수도 없게 된다. 그야말로 기존 정치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정치판이 열리는 셈이다.
87년 낡은 체제의 산물인 패권 양당제는 ‘승자독식’으로 인해 많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이를 고치려 들지 않았다. 현행 체제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양당이 권력의 단맛에 빠진 탓이다.
사실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승자독식의 양당제 시대를 마감하고 다당제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선거제 개편에 불을 지핀 건 손학규 전 바른미래당 대표다. 그의 목숨을 건 단식으로 ‘연비제 도입 합의’라는 기적을 이루어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의 노력은 패권 양당의 탐욕으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당시 야당 지도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노골적으로 방해했고, 여당은 민심을 그대로 의석수에 반영하는 100% 연동제가 아니라 50%만 연동하는 ‘반쪽 연동제’에다가 ‘30석 상한선’이라는 괴상한 ‘캡’까지 씌운 누더기 법안을 만들고 말았다.
그나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욕심이 가득한 패권 양당은 거기에 비례대표용 ‘위성 정당’ 창당이라는 꼼수로 얼마 되지 않는 소수 정당 몫까지 모두 빼앗는 파렴치한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걸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바로 잡겠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도 이런 방향으로 정치 개혁하겠다고 선언하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무공천’ 약속을 번복하고 ‘위성 정당’을 창당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번복했던 전력이 있는 민주당이라 신뢰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다만 이번에는 민주당이 약속을 번복하기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 일말의 기대를 걸어본다.
만일 민주당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거기에 도취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는 듯 다당제 약속을 내팽개치겠지만, 패배하면 곧바로 이어질 6월 지방선거 등을 의식해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다당제’를 기반으로 하는 ‘국민통합정부’를 약속한 만큼, 민주당은 ‘야당의 발목잡기’를 핑계로 댈 수도 없게 됐다.
손학규 전 대표의 목숨을 건 단식으로 뿌린 ‘다당제’ 씨앗이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로 결실을 보게 되는 셈이다. 다만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등 여전히 양당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수구 보수’ 세력의 반대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윤 후보와 안 후보가 단일화의 힘으로 그런 수구세력의 저항을 뚫고 나가야 할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압도적 정권교체’는 ‘새로운 정치교체’를 위한 시작에 불과하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나저나 ‘국민통합’을 외치던 손학규 전 대표는 윤석열-안철수 두 사람의 ‘다당제’를 위한 선거제 개편 합의 소식을 듣고 어떤 심경일지 궁금하다. 자신의 꿈이 현실로 다가온 소회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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