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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행태가 가관이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5명 가운데 최소 70명의 통신 기록을 조회했다고 한다. 국민의힘 의원의 절반을 훌쩍 웃도는 규모다.
김기현 원내대표, 김도읍 정책위의장, 추경호 원내수석부대표, 배현진 최고위원, 조수진 최고위원 등 당 지도부를 비롯해 평의원들까지 마구잡이로 통신자료를 조회한 것이다.
또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수사가 한창이던 10월 1일 당시 윤석열 후보 국민캠프 김병민 대변인의 통신자료까지 털었다. 그는 공수처의 수사 대상도, 국회의원도 아니다. 사실상 야당 인사들을 대상으로 불법 사찰한 셈이다.
더욱 가관인 건 공수처 수사 대상도 아닌 언론인을 상대로 무차별 통신 조회를 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공수처와 정권에 비판적 기사를 썼던 기자의 취재원 색출 작업을 벌인 것이다.
이는 취재원 보호가 생명인 언론 자유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는 처사로, 21세기 자유민주 국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문재인 정권과 공수처에 비판적인 교수와 시민단체 등 민간인들까지 무더기로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공수처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내세운 ‘1호 공약’으로 “무소불위의 검찰 권력을 견제하겠다”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독일 나치스 정권의 정치경찰인 게슈타포(Gestapo)와 같은 ‘권력의 친위 부대’가 되어 공공연하게 야당 의원과 언론인, 민간인들까지 무차별적으로 사찰을 벌인 것이다.
반면 정작 ‘검찰 권력 견제’라는 본연의 임무는 내팽개치고 말았다.
실제로 출범 두 달 만인 지난 3월 ‘김학의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사건의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공수처장 관용차로 태워와 면담 조사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권력 견제는커녕 되레 권력 실세에 대해선 납작 엎드려 이른바 ‘황제 조사’를 한 것이다.
공수처는 당시 “다른 공수처 차량은 체포 피의자 호송용으로 뒷좌석 문이 안 열린다”라는 거짓 해명 보도 자료를 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공수처 대변인이 검찰 조사까지 받았다.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으로 기소된 이규원 검사의 ‘윤중천 면담 보고서 허위 작성’ 의혹 사건은 검찰에서 넘겨받은 뒤 9개월이나 시간을 ‘질질’ 끌다가 최근 다시 검찰로 넘겼다.
공수처가 수사했던 여권 인사는 ‘조희연 서울교육감의 부당 채용 사건’이 유일했다.
과연 이런 공수처를 그대로 두어도 되는지 의문이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공수처의 불법 행위에 책임 있는 자들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라고 밝혔다.
윤 후보는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가오는 대선에서 반드시 정권을 교체해야 하는 이유 중 일등 공신은 공수처”라며 이같이 적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뭔가 큰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라며 “고위 공직자를 대상으로 한 수사 기관을 만들어놨더니 하라는 일은 안 하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보기관의 국내 파트 역할을 하고 있다. 게슈타포나 할 일을 하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이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는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재명 후보는 과거 자신이 비슷한 일을 겪었을 때는 ”국정원의 조작 사찰은 낯설지 않다“라며 ‘펄쩍’ 뛰었었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아무 말이 없다. ‘내로남불’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특히 민주당의 태도가 심각하다.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광범위한 언론인·민간인·정치인들의 통신 기록 조회 문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따지기 위해 현안 질의를 요구했다.
이에 조오섭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사찰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라며 “법사위 현안 질의가 굳이 필요할까”라고 반문하는 것으로 거부 의사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지난주에 보도 자료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정확한 부분은 공수처 보도 자료를 확인하면 고맙겠다"라고 전했다.
앞서 공수처는 지난 24일 출입기자단에 배포한 자료에서 "올해 출범한 이후 모든 수사 활동을 법령과 법원의 영장 등에 근거해 적법하게 진행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민주당의 주장은 공수처가 그렇다니까 따질 필요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게 집권 여당의 입장이라면 실망이다. 국회가 언제부터 집행부의 말을 그대로 믿는 기관으로 전락했는가. 행정부의 말에 대해 사실 여부를 따져 보는 게 입법부 역할 아니겠는가.
이제는 ‘사찰기관’으로 전락한 공수처 해체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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