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취한 ‘민주시민’

    칼럼 / 시민일보 / 2001-09-06 13:4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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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제파출소 경사 손호문
    며칠전 자정이 다 될 무렵쯤, 취객 한사람이 파출소에 들어왔다. 무언가 급한 모습을 한 그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화장실을 한번 사용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20대 중반의 직장인인 그는 술이 많이 취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안절부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용변이 몹시 급하긴 급했던 모양이었다.


    빨리 화장실을 가리켜 주었더니 허겁지겁 화장실로 달려가 급한 용변을 다 보고 나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 경찰의 친절한 모습에 무척 감격스러워 했다.

    “마땅히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너무 정중하여, 오히려 내가 무안한 마음마저 들었다.

    용변을 다 본 후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이 사람은 소변이 아주 급하여 아무 곳에나 볼일을 보려 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멀리서 반짝반짝 돌아가는 파출소 앞 캐릭터(포돌이) 불빛을 보고, 죄의식을 느껴 소변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경찰서 화장실을 이용할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그는 포돌이 덕분에 화장실을 사용하게 된 것이고, 결국은 법을 위반하지 않고 지키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용변이 급했던 당시, 그는 파출소에 가기가 왠지 싫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들어왔지만, 들어와서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경찰들이 술 먹은 사람을 천박하게 대하기는커녕, 의외로 친절하게 대해 주는 모습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진 경찰의 모습에 새삼 놀라워했다.

    그렇다. 이 사람은 술을 마셨을 뿐이지, 어떤 죄를 저지른게 아니었다. 참으로 기쁘고 흐뭇한 마음이 아닐 수 없었다.
    대개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 취한 척 시비를 걸거나 주정을 부린다. 그것이 부족하면 더 거친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자기의 행동을 이성으로 판단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민주 시민으로서 양심적인 행동과 자성할 줄 아는 모습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법치국가에서 기본적으로 법을 잘 지켜야 되지만,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솔직히 시인하고 법의 조치를 달게 받을 줄 아는 선진시민으로서의 성숙한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비록 사소한 일이었지만 이 사람의 태도는 많은 교훈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2001 한국 방문의 해’와 ‘2002년 한일 월드컵’ 등 국가 대사를 앞 둔 시점에서 잘못된 의식의 변화와 질서확립으로 성숙된 문화시민의 태도를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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