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대원으로 3년을 보내면서 나의 가슴은 점점 식어갔다.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고자 했던 처음의 다짐은 점점 퇴색되어 갔다.
과도한 업무로 인해 나는 만성피로증후군에 빠졌고, 일부 보호자들과 환자들의 이기적인 행태로 인해 내 마음도 지쳐갔다.
얼음물에 빠져 심장이 멎은 환자를 CPR로 회생시켰더니 일주일만에 전화가 왔다. “혹시 xxx환자 가방 거기서 보관하고 있나요?” 얼음을 도끼로 깨고 들어가 구조한 구조대원이 병문안을 갔더니 그 환자의 어머니는 구조를 너무 늦게 해서 환자가 회복이 늦었다고 화를 냈다고 한다. 환자는 일주일만에 회복되어 퇴원했다. 분명히 말하지만 환자는 당시 심장이 멈췄고 호흡이 없었으며 동공이 산대되어 있었다.
야간에 만취하여 지나가는 행인에게 시비를 걸다가 안면을 심하게 폭행 당한 환자가 있었다. 우리는 그를 응급처치한 후 경찰과 같이 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런데, 그 환자는 자신이 구급대원과 경찰에게 폭행 당했다고 주장하며 가족을 파출소로 불러들여 행패를 부렸다. 우리는 그날 밤 꼬박 파출소에서 그의 가족들에게 사건의 경위를 해명해야만 했으며, 새벽에 잠자는 증인들을 깨워 그 가족들에게 직접 증언을 하게 해야만 했다.
그날 밤 파출소를 나오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매일 밤을 뜬눈으로 새우는가. 나 자신의 건강을 해쳐가며 일한 결과가 누명을 쓰거나, 얻어맞거나, 욕을 먹거나 아니면, 겉치레 인사를 듣는 것인가. 나는 구급업무에 심한 회의를 느꼈다. 아마도 모든 구급대원이 이런 경험을 했으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모든 환자가 모두 우리들의 힘을 빼는 것은 아니다. 많은 환자들이 우리들의 이송과 응급처치에 대해 큰 만족과 감사를 표시한다. 심지어는 일부러 소속 파출소를 알려주지도 않았는데 파출소까지 찾아와 고마움을 표하기도 한다.
얼마전 갑상선항진 등으로 전신마비증상을 보이던 한 환자는 강릉에서 올 때 사설 응급차에서는 짐짝 취급을 당하다가 119를 타니 환자를 정성스럽게 돌봐주고 친절해서 더욱 고마웠다고 했다. 이 말을 들으니 내가 환자와 보호자의 인간미에 도리어 감동을 받았다. 그들은 감사하다며 복숭아를 들고 왔다.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는데 차마 이것조차 거절하기는 어려워 감사히 먹겠다고 했다.
다시 한번 나는 생각해본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환자의 피를 닦아주고, 그들의 상처를 감싸주는 것은 아니라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충실함으로써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타인이 그들의 일에 충실함으로써 우리가 혜택을 받는 것처럼.
때로는 무레한 시민들이 있다고 해도 그들을 넉넉한 마음으로 용서하자. 그들보다 많은 사람들이 고상한 인격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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