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서 침뱉기 아닐까

    칼럼 / 시민일보 / 2002-03-04 19: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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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하승 편집국장 직무대행
    ‘일을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둔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반도이폐(半途而廢)’라는 말이 사용된다.

    동한 시대 하남지방에 낙양자(樂羊子)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낙양자가 먼 곳으로 스승을 찾아가 공부를 하다가 일년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집에서 베를 짜고 있던 아내가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 학업을 다 마치고 돌아오셨소?”

    “아직 다 배우지는 못했소. 그러나 당신이 너무 보고싶어 먼저 이렇게 돌아온 거요.” 그러자 그의 아내는 곧 가위를 들고 베틀로 가더니 다짜고짜 짜고 있던 베를 잘라버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 베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베틀에서 짜여지는 것입니다. 한 가닥 한 가닥 정력을 기울여 한 마디를 짜고 한 장을 짜서 비로소 한 필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베를 잘랐으니 며칠 동안 힘들여 짠 것은 무효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당신이 학업을 중도에서 포기하고 돌아온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학업은 매일매일 쌓아 나가 연구를 끊임없이 게을리하지 않아야만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반도이폐(半途而廢)’한다면 베틀에 짜 놓은 베를 잘라내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중도에서 포기해 버린다면 그동안의 고생이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런데 그런 일이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정치개혁 방안으로 국민경선제라는 정치역사상 획기적인 방법을 실시하고 있다. 그런데 잡음이 많다. 민주당도 그렇고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고건 서울시장을 후보로 재추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민주당도 그렇지만 한나라당도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한심하기가 이를 데 없다.

    박근혜 의원 탈당 이후 한나라당내에서는 이회창 총재를 경선없이 대선후보로 추대하자는 주장이 급부상하고 있다. 후보경선과 관련, 당의 한 고위관계자는 4일 “박근혜씨 탈당으로 사실상 의미가 없는 경선을 일부러 모양을 만들 필요가 없다”며 “안되면 추대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한 주요당직자도“경선과 합의추대 양쪽을 다 준비하고 있다”며 “합의추대도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시·도지사 후보와 시·군·구청장 후보선출에서도 일부지역에서 경선을 저지하고 특정인을 합의 추대하려는 시도가 공공연히 진행돼 출마자들의 강력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실제로 권오을 의원이 4일 한나라당 경북도지사 후보선출과 관련, ‘민주적 경선을 무산시키려는 행위’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오죽하면 국민경선제 원칙 등을 당헌당규에 규정해 놓고 실제로는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등 시대 추세에 역행한다는 주장이 한나라당 당내에서까지 제기되고 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대목이다. 이쯤되면 낙양자가 중도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돌아온 것처럼 차라리 국민경선제를 실시하지 않은 것만도 못한 셈이 되고 말았다.

    민주당의 국민경선에 대해 ‘무늬만 경선’이라며 비난해온 한나라당이 대통령 후보를 합의 추대하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누워서 침뱉기’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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