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대하소설 황제의 싸움터

    칼럼 / 시민일보 / 2003-07-01 18:2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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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제주 4.3 民亂
    (1) 7년 가꾼 순정의 꽃

    고정관은 협박편지를 보낸 유력한 용의자로 한남마을의 강민호(姜民浩=26)와 김찬식(金贊植=25)을 꼽고 있었다. 조용석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열등감 탓이겠지요? 정치학을 전공했다지만 웅변에 관한 한 발뒤꿈치도 따라오지 못할테니까. 그런데 일본에서 좌익계사람 따라다니며 독립운동 흉내냈었다는데. 그게 사실일까요?”

    조용석이 빈정대는 목소리로 고정관에게 물었다.

    “음, 그런 얘기 얼핏 들은 것 같네, 직접 목격한 적은 없지만, 그 보다도 인간 됨됨이가 문제지. 시기하고 헐뜯는 성격 그게 인격적 흠이 아니겠어?”

    고정관은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치는 듯 떨떠름한 목소리로 혹평을 했다.

    “강민호는 아버지가 관료출신이어서 그랬는지 공립보통학교 출신이고 ‘영재의숙’ 동문들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 아닙니까? 그리고 김찬식은 대학에서 문과에 적을 두었었고, 저하고는 상통하는 점이 적지 않은 편이에요. 영재의숙 동창이구…. 강민호 그 사람은 고등상업 즉 전문학교 과정을 마치고 D대학 정치학부에 편입을 해서 정치학을 전공했다지요?”

    “역시 김찬식 그 사람도 인간성이 좋아보이지는 않아. 질투하고 모함하는 성격인데다 우리 두사람을 늘 눈엣가시로 생각해 온 사람이라구”

    “이미 덫을 놓았으니까 하나가 걸리든 둘이 걸리든 걸려드는 건 시간문제 아니겠어요? 느긋한 자세로 지켜보기로 하자구요”

    도선마을에 다녀본 뒤부터 고정관과 조용석은 자신들의 목숨을 노리고 있는, 어둠속의 검은 집단에 대한 경각심을 잠시도 누그러뜨릴 수 없었다.

    두사람은 작전상 강민호와 김찬식을 ‘영재의숙’ 야간부 강사로 채용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고정관과 조용석은 어머니들이 추천한 5명의 청년들을 비밀 정보요원으로 고용했다.

    강민호와 김찬식에게 각각 1명씩 붙여주어 물샐틈없는 감시망을 펴게 했고, 2명은 자신들의 집 주위를 담당케 했다. 그리고 나머지 1명은 마을 안에서 요령껏 정보수집할 것을 지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민호와 김찬식은 눈치를 채기라도 한 것인지, 이틀밤 사흘이 지나도 레이더망에 잡히지를 않고 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고정관과 조용석은 예정대로 2명의 용의자를 야간강사로 끌어들였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은 이게 왠 떡이냐 하고 기꺼이 수락을 했다.

    덫인줄 아는지 모르는지…?
    비록 오월동주(吳越同舟)격이긴 해도 가까이서 동태를 살필 수 있는 잇점이 있어서, 고정관과 조용석에서 있어서는 썩 잘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선입견을 갖게 해 주었다.

    그렇다면 안팎으로 ‘사면초가’의 포위망 속에 들어있는 두 용의자는 꼼짝없이 잡히게 될 것인가? 고정관과 조용석은 헛물켜기 작전에 스스로 도취해 있는 줄도 모르고, 눈이 빠지게 용의자들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며 하늘에 주먹질하는 ‘달밤의 체조’만을 즐기고 있었다.

    고양이를 못 잡으면 생쥐 한 마리쯤은 붙잡아야 할 터인데!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있었지만, 무정한 덫은 주인의 피만 말리고 있으니 차마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해서 때려치울 수도 없고 따분하고 지루하기만 했다.

    그러나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게 마련이라는 말에 한가닥 희망을 걸고 끝까지 버티겠다는 것이, 고정관-조용석의 눈물겨운 결의이자 꺾일 줄 모르는 투지였다.

    그런데 용의자는 잡히지 않은 대신, 구세주가 불쑥 나타났다.

    이만성-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던 만큼 이만성은 헤어진지 3일째로 접어든 날 저녁, 한남 마을로 내려갔다. ‘영재의숙’으로 직행한 이만성은 교실을 가득 메운 학생들 앞에서 취임인사를 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나자 두 사람의 뒤를 따라 고정관의 집 안방으로 안내되었다.

    세사람이 모여 앉은 방안에는 고정관의 어머니 윤여사와 조용석의 어머니 고여사도 동석을 했다. 이 자리에서 이만성은 기상천외의 어마어마한 사실을 터뜨림으로써 네사람은 아연실색 놀라게 했다.

    얘기는 3일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했다. 고정관과 조용석이 달미동에 찾아갔던 날 밤이 되자 두사람이 귀가하기 바쁘게 협박편지 받았던 그 무렵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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