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 아빠'의 죽음

    세상사는이야기 / 시민일보 / 2003-07-05 17: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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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INK:1} 기러기는 암컷을 잃어도 혼자 새끼를 키우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족학이나 복지학에서는 ‘편부(片父) 가정’의 아버지를 가리켜 ‘기러기 아빠’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기러기 아빠’라는 말이 불과 2∼3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널리 통용되기 시작했다.

    자녀와 부인을 외국에 보내고 국내에서 혼자 외롭게 ‘편부(片父) 아닌 편부(片父)’로 생활하는 남편들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학부모들이 자녀들을 남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받게 하고 싶어하는 우리나라의 특이한 교육상황이 빚어낸 ‘신(新)이산가족’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녀가 남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시키는 것 자체를 자식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기에 혼자 생활하는 이들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에서도 자녀들의 유학경비를 위한 해외송금제도를 자유화 시키면서 조기유학 붐이 일자 자녀교육을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기러기 아빠’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처럼 남의 자식이 조기유학을 떠나니 내 자식도 조기유학을 보내지 않으면 사회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경쟁심리와 불안심리가 겹쳐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는 최근 발생한 아내와 두 자녀를 외국으로 보낸 ‘기러기 아빠’가 결국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에서 알 수 있다.

    신모(36. 사업)씨는 지난해 7월 아내 및 초등학교와 유치원에 다니는 두 남매를 캐나다로 조기 유학을 보낸 뒤 후유증으로 방황하다 올해 초 우연히 만난 여성과 불륜의 관계를 맺은 것이 화근이 됐다.

    이를 알게된 신씨의 아내는 지난 3월 간통죄로 신씨를 고소했고 결국 지난달 파국을 맞이했다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신씨는 사업에 어려움을 겪어 자녀의 학비를 대기도 빠듯했고 직원 월급 또한 수개월 밀린 데다 신씨의 파경으로 어머니가 쓰러지자 죄책감에 자신의 사무실에서 목을 맸다는 것이다.

    신씨가 남긴 유서에는 “여보 사랑해요. 잘 살아요. 미안해요”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기러기 아빠’들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수년동안 자녀교육을 위해 혼자 외로이 생활하며 가족의 생계와 자녀교육을 위해 일을 해야하는 ‘이산가족 생활’이 원인이 된 일종의 가족해체현상이 현실로 나타난 감이 들어 씁쓸할 따름이다.

    생이별이나 다름없는 이런 생활이 정상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또 몇 년 동안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했지만 남은 것은 가족들로부터의 외로움으로 인해 길거리를 방황하는 ‘펭귄아빠’들도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가족 붕괴에 의한 사회 이혼율 증가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기러기 아빠’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사교육비 해소를 통해 조기유학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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