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보다 처방을

    세상사는이야기 / 시민일보 / 2003-10-23 19: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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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 란 정치행정부장
    {ILINK:1}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된 SK 비자금으로 불거진 정치권의 불법자금 역풍이 예사롭지 않은 가운데 정치권의 위기의식 역시 생각보다 심각한가 보다.

    그동안 적대적 관계로 이어지던 여야가 유독 비자금 정국 타개책과 관련해서는 긴급한 공조관계를 이루고 나섰다.

    전방위로 불어닥치는 SK비자금 회오리가 대선자금과 연계된 정치권의 촉수를 자극하던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7월에 이어 다시 한번 ‘여야 대선자금 동시 고백하자며 재거론하자 여야 모두 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목소리로 수용의사를 밝혔다.

    사실 지난 7월 노대통령이 처음 ‘고해성사’를 제안했을 때만 해도 한나라당은 ‘신당띄우기 위한 음모’’물귀신작전’ 등의 용어를 써가며 이를 전면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것이 3개월이 지난 지금 시점에 와서는 오히려 한나라당 측이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도 그럴 것이 SK 비자금으로 수세에 몰린 한나라당 내부의 위기의식이 그만큼 다급해졌다. 민주당은 물론 대선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여야 모두 ‘불법 정치자금 털어버리기’ 해법으로 대선자금 고해성사로 1차 ‘정치적 사면’을 받고 2차로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대해 ‘법적 사면’하는 ‘정치자금 특별법 제정’을 적극 검토하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당의 이해관계가 한꺼번에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권 논의는 긴박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 처리에 앞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지금 정치권은 무조건적인 면책을 전제로 한 논의를 진행시키고 있는데 이는 상당히 위험하다. 면책이건 면죄 건 미리 결론부터 짓는 것은 국민적 호응을 얻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죄과에 대한 분명한 반성없이 이뤄진 사면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먼저 통렬한 자기고백과 성역없는 수사를 통해 철저히 발가벗겨지는 과정이 선행돼야 한다. 그리고 나서 좀 더 신중한 논의과정을 거치고 난 이후 결론을 도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는 면책의 진정한 의미가 바로 설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정치권의 공조분위기 역시 곱지 않게 비춰질 수 있다.

    그동안 산적한 민생 현안에 대해 정치권이 보인 무성의한 일처리 속도와 비교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발등에 떨어진 횡액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동병상린의 아픔을 나누며 합리적인 해법을 모색하는 것은 좋지만 자칫 끼리끼리의 해결로 그친다면 이는 더 큰 화근을 자초하는 자충수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어쨌든 문제가 터진 이후다.

    급하더라도 아전인수에 급급한 모습은 ‘독약’이다.

    명분을 잃지말자. 그것이 실종된 정치 신뢰를 회복할 수있는 진정한 처방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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