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한 DJ, 더 한심한 한나라당

    기고 / 시민일보 / 2006-02-15 21: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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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INK:1} 김대중 전 대통령의 4월 방북설을 둘러싸고 여야 정치권이 연일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나라당은 물론, 김 전 대통령의 종가집에 해당하는 민주당도 방북을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줄 것을 촉구하고 있고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측은 “일정 변경은 불가능하다”며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빤히 속보이는 줄 알면서도 정부 차원에서 김 전 대통령 방북에 대해 논의한 바 없으며, 북측과도 협의한 바가 전혀 없다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은연중에 청와대가 김 전 대통령 방북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입장에서야 김 전 대통령이 자진해서 지방선거가 임박한 4월에 방북하겠다니 그야말로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을 일이겠지만 왜 김 전 대통령은 굳이 4월 방북을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 더욱이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맹렬히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3김의 한 축이었던 김대중이 김영삼과 구별되었던 부분은 바로 ‘정치적 퍼포먼스’에 약하다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한건’을 터뜨리면서 정치적 입지를 넓혀나간 YS와 달리 DJ는 늘 실기를 거듭했다. 그가 YS 보다 늦게 대통령이 된 이유도 호남과 영남이라는 지지기반의 차이만 갖고 설명하기 어렵다. 이 역시 퍼포먼스에 약한 DJ의 스타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러던 DJ가 퇴임후에는 YS 뺨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할 때의 절묘한 타이밍, “열린우리당이 나를 정치적으로 계승하고 있다”는 발언, 그리고 이번 4월 방북에 이르기까지 정말로 타이밍 치고는 너무나 기가 막히다. 이는 두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민주당 분당-열린우리당 창당-노 대통령 탄핵-4.15총선 열린우리당 압승-잇따른 여당의 재보선 참패-신건·임동원 구속 등 메가톤급 정치태풍을 앞에 놓고 스스로 살아남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변신할 수밖에 없었거나, 대통령에게 목덜미를 잡힌 상황에서 계속적인 압박을 받고 있고 이를 위해 4월에 방북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어느 쪽이 되었건 DJ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 또한 좋게 생각하자면 기왕 가는 것 청와대와 여당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도 받고 가뜩이나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형이슈가 부족한 상황에서 방송사들도 앞다투어 보도경쟁을 벌일테니 여론의 포커스도 흠뻑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이와 같은 정치적 퍼포먼스 차원에서 접근해서는 곤란한 사안이다. 지금까지도 김 전 대통령의 6.15 정상회담이 비난받는 이유 중 가장 큰 두가지가 바로 추진과정에서의 난맥상과 방북 타이밍에 관한 부분이다. 이번에 굳이 4월에 방북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이번 방북은 물론, 지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역시 정치적으로 그 의도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을 김 전 대통령 스스로 자인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러나 이러한 DJ 방북에 대해 목놓아 욕설과 신경질을 퍼붓는 한나라당 역시 딱하기는 마찬가지다. 아니 딱한 정도가 아니라 한심한 수준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가 말했듯이 DJ 방북 자체는 “반대할 사안이 아니다”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정서이다. 단지 그 시기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DJ 방북이라는 이슈를 통해 남북관계에 대해서 만큼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선점효과를 확실히 거두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와 같이 선점효과를 거둘 수 있는 이슈를 어째서 한나라당은 아직까지 하나도 발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 한나라당이 해온 상당수의 일들은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하는 일에 대해 목놓아 반대를 외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기집권을 노리는 정치세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그것만 가지고는 국민들에게 호소력을 가질 수 없다. DJ의 4월 방북, 막는다고 해서 막아질 일이 아니다. 현실 권력을 쥐고 있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고 북한당국 역시 김일성 생일이 4월이라는 점을 들어 환영 의사를 나타내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힘으로 이를 막을 수 있겠는가?
    차라리 DJ가 그대로 방북하도록 놓아두면서 여권이 온통 북쪽에 정신 팔려있는 동안 국민들을 향해 보다 생산적인 아젠다와 메시지를 던짐으로써 DJ 방북 효과를 최소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정하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일 것이다.
    박근혜 대표가 미국을 방문하여 부시 대통령과 ‘자이툰 부대의 단계적 철수 합의’를 관철시키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또한, 고이즈미 총리를 만나 한일 역사 및 영토에 대한 공동조사위원회 구성에 합의하지 못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김대중-노무현-정동영-이종석이 합작하여 언론에 흘린 ‘남북정상회담’, ‘김대중 방북’, ‘김정일 답방’만 하더라도 벌써 여러차례에 이른다. 이미 이들은 국민 상당수로부터 ‘양치기 소년’으로 낙인 찍혀있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에 DJ가 북한을 다녀온다고 해서 뭐가 크게 달라지겠는가?
    지금이라도 한나라당은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을 믿고 ‘김대중 방북 딴지걸기’를 멈춰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스스로 아날로그 정당임을 만천하에 선포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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