春來不似春이라고 누가 말하던가!

    기고 / 시민일보 / 2006-11-05 16: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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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근(노원구청장)
    이천학(李淺學)이 조선의 고궁을 답사(踏査)하겠다고 별러온 것이 벌써 수년째이다.

    조선왕조의 정궁(正宮) 경복궁을 주제로 테마여행을 계획한 거다. 그러나 막상 고궁답사를 떠나려 할 때면 무슨 일이 생겨 수포(水泡)로 돌아가곤 했다. 그러다가 그때서야 경복궁(景福宮)을 찾았으니 어찌 힘든 발걸음이 아니겠는가!

    24절기로 따져 보니 어느덧 입춘(入春)이 지나가고 바야흐로 우수(雨水)가 문턱까지 왔다. 창밖에는 이미 성큼다가온 초봄의 전령사들이 고개를 들더니 만동(晩冬)의 맹추위를 밀어내고 있었다.

    ‘웬 천기(天氣)가 그렇게 심술을 부리던지!… 강냉기(强冷氣)에 진눈깨비를 머금은 난풍(亂風)이 몰아닥치는 게 아닌가!’

    마치 그 혹한(酷寒)은 동지섣달을 방불케 하였다.

    옛 선비들은 그런 고약한 날씨를 만날 때면 으레 이런 고사(古事)로 점잔을 뺐다. ‘장독을 깨는 것은 동지혹한(冬至酷寒)이 아니라 꽃샘추위라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말이 있지!…’

    여하튼 나는 자칫 답사 초장부터 큰 낭패(狼狽)를 볼 뻔했다.

    ‘여기서 경복궁 답사(踏査)를 그만 두어야 할까?… 아니면 그냥 눈비라도 맞으며 강행해야 할까?…’

    참으로 난감(難堪)해졌다. 별 도리가 없어 일단 몸을 광화문(光化門) 처마 밑으로 피했다. 그 주변에는 이미 수많은 답사객들이 빽빽이 모여들어 마치 역 대합실 같았다.

    그러나 정작 답사꾼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은 따로 있었다. 어디선가 난데없이 들려오는 ‘고함소리’였다.
    “왜 그렇게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해봐요… 도대체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넋두리야!”

    여하튼 웬 낯선 괴 영감이 한 청년을 항해 그렇게 역정(逆情)을 냈다. 양인(兩人)간에 격렬한 설전소동(舌戰騷動)이 벌어진 거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말다툼이 심히 볼썽사나웠다는 거다. 당신이 만약 그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알고 나면 정말 부끄러워해야 할 판이다.

    그 괴청년(怪靑年)은 고궁답사에 앞서 그 일행들에게 이런 넋두리를 피웠다.

    “경복궁은 자금성(紫禁城)에 비하면 참으로 그 규모가 작고 볼품도 없어요… 건축양식도 모방했고… 전각(殿閣)의 이름도 표절을 했어요.…”

    괴영감의 표정은 도저히 그 청년의 그런 막말을 듣기가 거북한 듯 했다. “그래! 자네는 대학생같이 보이는데… 자네가 자금성을 얼마나 공부를 했는지 모르지만… 도대체 경복궁이 뭐가 어떻다고?…”

    그 괴청년(怪靑年)의 행색을 잘 훑어보면 용모가 곱상하고 귀공자형인데다가 허우대는 멀쩡하여 아마 식자(識者)는 못되도 천객(賤客)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괴청년은 경복궁을 왜 그렇게 폄하(貶下)하였을까?

    정말 구역질이 날 정도다.

    사실 한국판… 자칭 ‘지성인(知性人)’들을 잘 파헤쳐보면 십중팔구가 그토록 알게 모르게 사대주의 망령에 빠져있다.

    강대국을 말감으로 삼을 때는 불쑥불쑥 “역시 중국은 대국(大國)이야…”라고 토해낸다.

    ‘중국 자금성을 수차례 구경했어도 경복궁은 한 번도 들러보지 못한 천골(賤骨)들부터… 북한산성은 근처도 못 갔어도 만리장성(萬里長城)에는 몇 번씩 올라가서는 불쑥불쑥 감격하는 천객(賤客)들… 거기에 숭례문(崇禮門:남대문) 보다도 파리 개선문을 더 잘 아는 천방지축들까지….’ 정말 그따위 사대주의 망령에 경악해야 할 때가 많다.

    그렇다면 ‘당신은 경복궁을 얼마나 아느냐?’고 다그쳐 물을 텐데 나도 일단 그 부류에서 빠져 나갈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고백하여 말하건대 이 천학(淺學)이 경복궁을 찾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 수학여행 때 다녀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러하니 나도 그 천객(賤客)들과 한 치도 다를 바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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