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미학(宮闕美學)

    기고 / 시민일보 / 2006-11-07 16:3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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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노근(노원구청장)
    우리 답사팀은 기껏해야 ‘그 노객과 나’ 두 명으로 구성됐지만 오히려 행동이 자유롭고 호젓하여 학습하기가 아주 편안했다. 수학여행단처럼 큰 무리를 지어 다니다간 떠들썩하고 진지하지 못하여 제대로 수강(受講)할 수가 없다.

    회갑잔치판을 떠들썩하게 벌리는 명문대가엘 가면 그 권세와 부귀가 천(賤)한 자는 문전에서 홀대를 받기 십상인데 우리 일행은 아주 단출하고 조용하여 그럴 염려는 없다.

    그 신상명세(身上明細)를 알기위해 나는 경복궁 이력서를 뒤졌다. ‘태조 3년 8월(1394년) 왕이 고려 남경(南京:한양)의 이궁(離宮)터에 왕도(王都)를 정하다… 태조 3년 10월(1394년) 한양으로 천도(遷都)하다’

    ‘태조 4년 9월(1395년) 경복궁(강녕전·연생전·경성전·사정전·근정전·융문루·융무루·근정문)을 조성하다…’

    ‘태종 12년 5월(1412년) 경회루를 짓다… 세종 8년 10월(1426년) 광화문·일화문·월화문·건춘문·영추문·영제교 이름을 짓다…’ 대소전각(大小殿閣)들이 하도 많은지라 일일이 그 이름을 둘러댈 수가 없다.

    그러나 경복궁 답사꾼들이 진정 명심해야 할 분야는 그와 같이 제도권의 권속(眷屬)들이 물성(物性)으로 만들어낸 ‘구조물(構造物)’들이 아닐 게다.

    아무튼 이번 경복궁 답사의 핵심코드는 무려 518년(태조1년 1392년~순종3년 1910년)간의 역사 속에 켜켜이 쌓이고 농축(濃縮)되어 있을 궁궐 문화를 살피면서 그 곳에서 아름답고 빛나는 보석(寶石)을 찾아내는 일에 맞추어야 한다.

    그래서 이 천학은 그 역사 정보가 정사(正史)든 야사(野史)든 정설(正說)이든 소수설(少數說)이든 개의치 않고 전부 소화시켜서 그 영양분을 추출하고 숙성시켜 나갈 작정이다.

    여하튼 그 영감은 나를 광화문 문전(門前)으로 몰아세우며 답사길을 재촉했다.

    그러더니 ‘경복궁 명당론(明堂論)’을 답사의 첫 화두로 내놨다.

    “선생께서는… 경복궁의 명당론을 알고 있나요? 아마 제대로 그걸 아는 사람은 드물 거요… 선생께서 그걸 잘 몰라도 부끄러워 할 건 없지요”

    사실 이 천학이 경복궁 명당론에 관하여 알고있는 정보라고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수도를 개경(開京)에서 한양(漢陽:1105년 숙종 때 남경)으로 옮기려 할 때 명당논쟁(明堂論爭)을 벌였다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데 마침 그 노교수와의 동행인연(同行因緣)으로 그걸 공부할 수 있게 된 거다. ‘차제에 마음먹고 풍수지식을 학습해야지…’

    ‘그 학습을 위해 답사 중 궁금한 것은 모조리 답사목록에 옮겨 놓을 거고… 답사강사로 이 영감을 정중히 모실 거야…’ 여하튼 대단한 각오였다. ‘마치 그 영감은 강단의 교수이고 나는 단하의 학생이다…’

    “영감님! 저는 풍수지리 같은 것 잘 몰라요… 그러니 경복궁을 쉽게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 천학이 그렇게 조심스레 겸양행세를 하였더니 그 노객은 금세 경복궁 풍수론을 설명하려는 태세였다. 그러나 그 영감의 첫째 화두는 엉뚱하게도 중국 명(明)과 청(淸)나라의 풍수논쟁이었다.

    “북경의 한족정권 명(明)나라가 농민의 난 등으로 쇠퇴한 틈을 타서 만주의 여진족장 누르하치(奴兒哈赤)는 1616년에 후금(後金)을 만주 심양(瀋陽)땅에 세웠어요…”

    “그런데 1636년 누르하치가 죽고 그의 아들이 황제(황태극:皇太極)로 올랐어요… 그리고 황태극의 첫째 사업이 국호를 금(金)에서 청(淸)으로 바꾸는 거였죠”

    신기한 것은 국호(國號)의 개명(改名)근거가 바로 풍수이론이라는 거다. ‘명(明)은 불이고 금(金)은 쇳덩어리니 불이 쇠를 녹일 수 있다… 불(明)을 끄려면 물(淸)이 있어야 한다…’

    중국 황태극은 국호를 청(淸)으로 바꾸고 나서 청 태종에 올라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1644년 중국을 통일하였다. 바로 그 영감의 얘기는 국가의 운명이 풍수지리에 좌우되었다는 것을 강조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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