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모욕죄’와 MB의 ‘법질서’

    고하승 칼럼 / 시민일보 / 2009-02-06 16: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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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 하 승
    이명박 대통령은 6일 ""잠시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불편이 있을지 몰라도 일류국가를 위해 법질서, 윤리가 지켜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고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10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오찬을 갖고 ""우리 사회에서 무너지고 있는 법질서를 유지하고 윤리를 지키는데 한 치 소홀함이 없도록 해 나가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법질서’니 ‘윤리’니 하는 단어를 언급하니 가슴 한구석이 꽉 막힌 듯 답답해진다.

    간단하게 하나의 사례를 들어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속도전’을 주문하는 쟁점법안 가운데 ‘사이버 모욕죄’라는 게 끼어 있다.

    물론 이명박 정부가 직접 법안을 발의하지는 않았다. 이 법안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에 의한 의원입법발의 형식을 띄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그거다.

    왜냐하면 지난 해 7월 22일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사이버 모욕죄 신설을 검토하는 등 인터넷 유해사범에 대한 처벌 강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 의원은 김 장관, 즉 이명박 정부를 대신해 의원입법발의를 해 준 것이라고 보면 맞을 것이다.

    그러면 ‘사이버 모욕죄’는 무엇이 문제인가?

    먼저 권력자가 자신의 반대세력을 탄압하거나, 여론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문제다.

    실제 명예훼손의 경우에는 사실의 적시 등 그 판단기준이 명확하지만, 모욕죄의 경우에는 판단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사이버모욕죄가 도입될 경우, 혐오스러운 욕설뿐만 아니라 풍자적 표현, 완곡한 표현, 다소 거친 표현 등도 모두 범죄에 해당되도록 자의적인 해석을 할 위험성이 매우 크다.

    특히 사이버모욕죄가 반의사 불벌죄로 처벌될 경우, 인터넷 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건전한 토론문화는 자취를 감출 수밖에 없다.

    사이버공간에서 공적 인물에 대한 토론이 벌어질 때마다 수사기관이 '모욕죄를 수사한다는 명분'으로 아무 때나 표현 하나를 꼬투리 잡아 그 토론마당에 대해 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모든 내용을 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명사회라면 당연히 자유롭게 말하고 비판하고 토론할 권리가 있는데, 그걸 못하도록 막는 법안이 바로 사이버 모욕죄인 셈이다.

    어쩌면 박근혜 전 대표가 ""쟁점법안 일수록 국민 이해를 구하고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이 대통령의 ‘속도전’ 요구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도 이 같은 우려 때문인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전 세계의 모든 국가가 사이버모욕죄 조항을 두지 않거나, 있더라도 모두 폐기한 상태다.

    작년 11월 국회 입법조사처가 “사이버모욕죄를 법률로 규정한 나라는 사회주의 국가 중국 외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조사 결과를 발표했으나, 사실은 중국도 ‘사이버 모욕죄’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실제 소준섭 국제관계학 박사는 “중국은 사이버모욕죄 명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물론 중국 법률에서 사이버모욕죄와 관련 ‘인터넷을 이용해 타인을 모욕하거나 사실을 날조하여 타인을 비방하는 행위는 형법의 관련 규정에 따라 형사 책임을 추궁한다’라는 규정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는 사이버모욕죄라는 별도의 법률 규정이 아니라 사이버상의 모욕 행위를 형법상 모욕죄로 처벌할 수 있다는 ‘선언적인’ 유권 해석이라는 것이다.
    결국 전 세계 어디에도 네티즌 입에 재갈을 물리는 이런 법률은 없다는 말이다.
    국민 여론도 그다지 긍정적인 것 같지는 않다.

    박사모가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반대 82%(409명), 찬성 17%(86명)로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사이버 모욕죄를 포함한 모든 쟁점 법안에 대해 속전속결 처리를 주문하고 있다.

    그런 그가 ‘법질서’니 ‘윤리’니 하는 단어를 언급하고 있으니 어찌 가슴이 답답해 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무래도 그가 생각하는 ‘법질서’와 ‘윤리’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가 생각하는 ‘법질서’와 ‘윤리’는 어떤 것일까?

    혹시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 곧 ‘반질서’요 ‘비윤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이쯤 되면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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