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힐러리 미 국무장관은 이화여자대학교를 방문하여 대한민국의 미래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자리를 하였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여학생들은 힐러리 장관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음~ 아마도 수년 뒤 아니면 수십 년 뒤에 힐러리 장관처럼 멋지게 성장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지 않았을까?
힐러리 로담 클린턴, 미국의 제 42대 퍼스트 레이디, 뉴욕주의 상원의원을 지내며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바 있는 그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준 금세기(今世紀) 최고의 여성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은 완벽한 남녀평등(男女平等)을 이루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지난 수세기 동안의 여성지위 변화는 괄목(刮目)할 만하다. 여성들이 참정권(參政權)을 가지게 되고 고등교육(高等敎育)을 시작하며 사회진출을 확대해 나가게 된 시기도 바로 얼마 되지 않은 과거부터였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최근 백여 년간 여성들의 지위향상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지난 85년 필자가 유학생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동양여성들이 미국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적이 있다. 주요방송국의 메인 앵커를 비롯하여 변호사 또는 의사 등 많은 전문분야에서 멋지게 성공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동양 남자들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이목구비(耳目口鼻) 뚜렷하고 늘씬한 서양인들에 비해 동양남자들의 밋밋하고 매력 없는 모습은 사회진출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동양인들의 성비(性比)를 따져보면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데 이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외모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양인 특유의 근성이 없었다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 침탈과 6.25는 여성들에게 더욱 끔직한 역사였다. 폐허 속에서 생존을 위해 겪어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피맺힌 한(恨)은 바로 이 참혹한 역사에서 비롯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한(恨)이 세대를 넘어서 지금에도 계속 전해 내려 오는 듯 하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그 뛰어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서 바로 그 한(恨)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열정적 이었었다.
어째 튼, 나중에 딸을 낳으면 꼭 미국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세계적인 무대 그리고 그 중심인 미국에서 훌륭히 성장한 딸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찌 나만의 욕심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딸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우리 딸들이 남녀차별(男女差別) 없는 곳에서 공평한 기회를 얻고 자신의 개성(個性)과 창의(創意)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면 그곳이 미국이 아니라 더 먼 곳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당시 미국의 모습은 내게 많은 영감(靈感)을 주었다. 특히 대학과정 중에서 필수인 주요 사회이슈에 대한 논쟁에서 더욱더 미국사회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낙태 및 안락사 문제, 동성애 문제, 의료보험이나 사회복지 프로그램, 그리고 남녀평등의 문제 등은 개개인의 기본적인 철학의 배경을 가늠케 하는 수단이었음 과 동시에 또 다른 철학형성과 향후의 사회발전 진행방향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영감(靈感)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리라 본다. 미국 사회가 20년 전에 비해 많이 변했고 그 결과를 우리가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통령 경선은 그야말로 흥미진진 했다. 오바마라는 정치 신인의 거센 바람으로 아쉽게 기회를 놓치기는 했지만 힐러리 당시 후보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았었다.
당시 힐러리 후보의 모습은 그녀를 바라보던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영감(靈感)을 주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보다 진화된 사회를 요구하는 희망과 기대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선전(善戰)이 미국의 상황에 견주어 그리 뒤쳐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이제 진정 남녀평등(男女平等)의 시대가 오려나 보다. 아직 넘어야 할 편견(偏見)의 산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빠른 속도로 현재 진행 중에 있음을 느낄 수 가 있다. 필자 역시 유교적인 영향으로 다소 보수 적이었던 때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와 같은 변화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아니 보다 빠른 속도로의 변화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사방에서 번쩍이는 플래쉬들, 기자들의 취재 열기 그리고 숨 가쁘게 움직이는 경호원들의 모습, 그 속에서 멋지게 서있는 힐러리 장관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그녀가 주는 영감(靈感)과 함께, 자신의 미래와 성공을 함께 그려 보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지금 그곳에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힐러리 로담 클린턴, 미국의 제 42대 퍼스트 레이디, 뉴욕주의 상원의원을 지내며 미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도전한바 있는 그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모든 여성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해준 금세기(今世紀) 최고의 여성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전 세계 어느 나라도 아직은 완벽한 남녀평등(男女平等)을 이루고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지난 수세기 동안의 여성지위 변화는 괄목(刮目)할 만하다. 여성들이 참정권(參政權)을 가지게 되고 고등교육(高等敎育)을 시작하며 사회진출을 확대해 나가게 된 시기도 바로 얼마 되지 않은 과거부터였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최근 백여 년간 여성들의 지위향상 노력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지난 85년 필자가 유학생으로 처음 미국을 방문했을 때, 동양여성들이 미국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놀란 적이 있다. 주요방송국의 메인 앵커를 비롯하여 변호사 또는 의사 등 많은 전문분야에서 멋지게 성공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반면 동양 남자들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이목구비(耳目口鼻) 뚜렷하고 늘씬한 서양인들에 비해 동양남자들의 밋밋하고 매력 없는 모습은 사회진출에도 별 도움이 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동양인들의 성비(性比)를 따져보면 여성의 비율이 더 높은 데 이는 여성 특유의 부드러움으로 외모에서 오는 이질감을 극복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무엇보다 동양인 특유의 근성이 없었다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일제 침탈과 6.25는 여성들에게 더욱 끔직한 역사였다. 폐허 속에서 생존을 위해 겪어야만 했던 우리 어머니들의 피맺힌 한(恨)은 바로 이 참혹한 역사에서 비롯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 한(恨)이 세대를 넘어서 지금에도 계속 전해 내려 오는 듯 하다. 미국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 그 뛰어남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서 바로 그 한(恨)의 모습을 보고 있는 듯 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정해 놓은 목표를 향해 쉬지 않고 발전해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 열정적 이었었다.
어째 튼, 나중에 딸을 낳으면 꼭 미국에 보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세계적인 무대 그리고 그 중심인 미국에서 훌륭히 성장한 딸의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어찌 나만의 욕심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서 딸을 가지고 있는 부모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우리 딸들이 남녀차별(男女差別) 없는 곳에서 공평한 기회를 얻고 자신의 개성(個性)과 창의(創意)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다면 그곳이 미국이 아니라 더 먼 곳이라도 보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당시 미국의 모습은 내게 많은 영감(靈感)을 주었다. 특히 대학과정 중에서 필수인 주요 사회이슈에 대한 논쟁에서 더욱더 미국사회에 대한 부러움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낙태 및 안락사 문제, 동성애 문제, 의료보험이나 사회복지 프로그램, 그리고 남녀평등의 문제 등은 개개인의 기본적인 철학의 배경을 가늠케 하는 수단이었음 과 동시에 또 다른 철학형성과 향후의 사회발전 진행방향을 제시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영감(靈感)이 세상에 미친 영향은 매우 크리라 본다. 미국 사회가 20년 전에 비해 많이 변했고 그 결과를 우리가 지금 보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난해 미국의 대통령 경선은 그야말로 흥미진진 했다. 오바마라는 정치 신인의 거센 바람으로 아쉽게 기회를 놓치기는 했지만 힐러리 당시 후보의 기세는 예사롭지 않았었다.
당시 힐러리 후보의 모습은 그녀를 바라보던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영감(靈感)을 주고 있었는데 이를 통해 보다 진화된 사회를 요구하는 희망과 기대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선전(善戰)이 미국의 상황에 견주어 그리 뒤쳐져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이제 진정 남녀평등(男女平等)의 시대가 오려나 보다. 아직 넘어야 할 편견(偏見)의 산이 많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빠른 속도로 현재 진행 중에 있음을 느낄 수 가 있다. 필자 역시 유교적인 영향으로 다소 보수 적이었던 때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위와 같은 변화를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바이다. 아니 보다 빠른 속도로의 변화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사방에서 번쩍이는 플래쉬들, 기자들의 취재 열기 그리고 숨 가쁘게 움직이는 경호원들의 모습, 그 속에서 멋지게 서있는 힐러리 장관을 바라보는 학생들은 그녀가 주는 영감(靈感)과 함께, 자신의 미래와 성공을 함께 그려 보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지금 그곳에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딸의 모습을 그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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