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가파 기자’의 ‘막가파 윤리’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09-07-02 16: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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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들까지... 세상이 막 돌아가는 느낌이네요...”

    <시민일보> 정치부 기자가 필자에게 “연합뉴스의 한 간부가 최근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기소된 MBC 제작진과 1년 여 전에 나눴던 통화내용을 검찰에 넘겼다”는 사실을 정보보고하면서 남긴 말이다.

    설마, 그런 일이...

    그런데 사실이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조능희 MBC 시사교양국 PD는 지난 30일 “지난 4월 검찰에 체포돼 조사를 받던 중 담당 검사가 이 모 연합뉴스 부장과 지난해 5월 나눴던 대화내용을 통째로 읽어줬다”며 “검사는 이 부장이 전화 취재한 대화기록을 갖고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조 PD는 “검사가 내게 읽어준 기록에는 당시 내가 이 부장에게 ‘사적인 것인가 취재인가’라고 묻자 이 부장이 ‘이것은 취재다’라고 답변한 것까지 들어있었다”고 전했다.

    검찰에 기자가 취재기록을 넘기면서 협조한 것은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다.

    아니, 그 이전에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기본적 윤리이자 상식이다.

    만일 <시민일보> 기자에게 그런 자료를 제출하라고 검찰이 요구했다면, 우리는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했을 것이다.

    기자의 취재원 보호 의무는 신부가 고해성사를 한 사람을 보호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합뉴스 이 모 부장은 “누구든지 간에 객관적 입장에서 의견을 (검찰에)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항변했다니, 참으로 한심한 사람이다.

    물론 누구든 객관적 입장에서 자신의 의견을 밝힐 수 있다. 그러나 기자의 경우는 다르다.

    만일 고해성사 들은 신부가 그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한다면, 어찌 될까?

    그 신부는 당장 파면을 당하고 말 것이다. 취재원을 보호해야 하는 기자의 세계 역시 그렇다.

    정부정책을 비판한 보도에 대해 검찰이 언론자유를 침해하면서 수사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언론인이, 어쩌면 자신도 유사한 일을 겪게 될지 모르는 데 수사기관에 취재자료를 넘긴다는 게 어디 말이나 될법한 일인가.

    이는 명백한 직업윤리 위반으로 필자는 기자로서의 그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명박 정권이 MBC ‘PD수첩’을 “한국 사회를 혼란으로 몰아가려는 악의적 프로그램”으로 지목하고, 검찰 수사하는 것에 대해 같은 언론인으로서 분노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이명박 정권은 ‘PD수첩’이 촛불 원인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촛불시위 전개 과정을 연구해온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최근 “지난해 4월29일 피디수첩이 방영되기 전부터 인터넷에선 이미 쇠고기 협상을 비판하는 광범위한 여론이 형성돼 있었고, 피디수첩은 여론 확산의 촉매제 중 하나였을 뿐”이라며 “피디수첩 때문에 촛불시위가 벌어졌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음모론적 해석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취재자료를 검찰에 넘긴 이 모 부장 역시 “검찰이 (PD수첩을)문제 삼아서는 안 될 것”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자신도 검찰이 잘못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취재자료를 검찰에 넘겼다면, 아무래도 자의적 판단으로 빚어진 일은 아닌 것 같다.

    더구나 연합뉴스에서 부장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취재원 보호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기자의 기본윤리조차 모를 리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혹시 상부의 지시나 압력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상부는 연합뉴스 내부에 있는 사람인가, 아니면 청와대나 한나라당, 혹은 ‘공안통’으로 소문난 천성관 검찰청장 내정자 등 외부에 있는 사람인가.

    연합뉴스 이 부장은 이에 대한 자신의 고백이 있어야 한다.

    그나저나 부득이한 외부 압력에 의해 이 부장이 그런 행위를 했더라도 실망이지만, 만일 자의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 같은 언론인으로서 필자는 더욱 실망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정부와 여당이 국민여론을 무시하고 미디어법을 밀어붙이는 ‘막가파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듯 아픈데, ‘막가파 기자’의 ‘막가파 윤리’까지 봐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서글프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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