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수-작가.미술칼럼니스트)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말만 무성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면 100년 전이나 200년 전 공예품이나 인간문화재의 전승 공예를 생각하기 쉽다. 앞으로 100년 후나 200년 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자.
2007년의 시대상과 상황이 담겨진 미술품을 찾아야 한다. 시대적으로 현재 이전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를 기본으로 창작되어야, 지리적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새로운 가치의 미술품이 생겨난다.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지금 현재 미술품에 담겨진 정보가 하나의 경계로 자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이 아닌 미래로 이어진다. 미술은 이렇게 시대적 정신으로까지 확장되는 중요한 문화이다.
미술품은 한 시대의 양식이라기보다는 어느 시대나 장소, 어떤 문화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존재 양식 그리고 정보이다. 미술품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정보가 담겨져 미래의 가치로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 사회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2007년 우리나라의 감수성은 무엇일까요? 어떤 그림을 그리면 화랑에 주목받을 수 있을까요? 어떤 재료와 어떤 형식으로 그려야 할까요?”
“어떤 작품을 골라야 돈이 되죠?”
이런 질문보다, 이런 고민에 앞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제 아트 페어 현장에서 만났던 외국 큐레이터는 대한민국과 같은 특수한 상황의 사회에서 왜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미술품이 없는지를 물어온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현대 미술이 유입되어 지극히 중국적인 미술품이 만들어졌잖아요. 중국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사회주의를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형태의 감수성이 작품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은 유일을 분단국가임에도 분단국가의 감수성을 그린 미술품을 발견할 수가 없어요.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한국의 문화를 그려내는 것이 세계 미술시장에 호소할 수 있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작가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군요.”
역사에 남아있는 많은 미술품들은 전쟁이나 사회 격변기를 통해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이 끝난 50. 60. 70년대의 치열했던 상황을 예술품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었던 토양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창작의 자유를 막아왔다. 사회의 정보가 있는 그대로 알려지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폭력적 민중 미술이 만들어졌다. 정서적 교감보다는 사회적 교화가 시급했던 시점이다. 80년대의 민중 미술은 폭력성이 가미되어 보통의 감수성이라고 하기엔 2% 부족해 보인다. 지나친 폭력성이 보통 사람의 눈에 오히려 역효과를 주었다. 극렬하게 대비되는 사회성이 서정적으로 전파되어야 했음에도 그러하지 못했다.
70년대까지 서민의 방안을 장식했던 밀레 그림의 캘린더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라고 해석했던 그런 그림들이 어느 날부터 억압받는 민중의 그림이라고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이삭 줍는 여인’은 봉건 영주에게 작물을 다 빼앗겨 이삭을 주워서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모습으로, ‘만종’은 복된 하루에 감사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연장의 꿈으로 해석되었다. 밀레는 우리 사회의 갈등에 쫓겨났고 그 자리를 아무 의미 없는 풍경화와 예쁘기만 한 정물화가 자리를 차지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것이다.’ 말만 무성하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면 100년 전이나 200년 전 공예품이나 인간문화재의 전승 공예를 생각하기 쉽다. 앞으로 100년 후나 200년 후에 가장 한국적인 것을 찾는다고 생각해 보자.
2007년의 시대상과 상황이 담겨진 미술품을 찾아야 한다. 시대적으로 현재 이전의 가치와 새로운 가치를 기본으로 창작되어야, 지리적 사회적 여건이 충분히 반영되어야, 새로운 가치의 미술품이 생겨난다.
시대적 상황으로 보면 지금 현재 미술품에 담겨진 정보가 하나의 경계로 자리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이 아닌 미래로 이어진다. 미술은 이렇게 시대적 정신으로까지 확장되는 중요한 문화이다.
미술품은 한 시대의 양식이라기보다는 어느 시대나 장소, 어떤 문화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존재 양식 그리고 정보이다. 미술품이 비싼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재의 정보가 담겨져 미래의 가치로 살아남을 수 있는 미래 사회의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2007년 우리나라의 감수성은 무엇일까요? 어떤 그림을 그리면 화랑에 주목받을 수 있을까요? 어떤 재료와 어떤 형식으로 그려야 할까요?”
“어떤 작품을 골라야 돈이 되죠?”
이런 질문보다, 이런 고민에 앞서, ‘가장 한국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국제 아트 페어 현장에서 만났던 외국 큐레이터는 대한민국과 같은 특수한 상황의 사회에서 왜 특수한 상황을 이야기하는 미술품이 없는지를 물어온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 이후 현대 미술이 유입되어 지극히 중국적인 미술품이 만들어졌잖아요. 중국 사회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자국의 사회주의를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자본주의를 수용하는 형태의 감수성이 작품으로 나타납니다. 한국은 유일을 분단국가임에도 분단국가의 감수성을 그린 미술품을 발견할 수가 없어요.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한국의 문화를 그려내는 것이 세계 미술시장에 호소할 수 있는 독특한 감수성으로 보입니다. 그러한 작가를 찾고 싶어도 찾을 수가 없군요.”
역사에 남아있는 많은 미술품들은 전쟁이나 사회 격변기를 통해 만들어져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전쟁이 끝난 50. 60. 70년대의 치열했던 상황을 예술품으로 만들어낼 수가 없었던 토양을 가지고 있다. 거창한 냉전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나라 정부가 정권 유지를 위해 창작의 자유를 막아왔다. 사회의 정보가 있는 그대로 알려지면 곤란했기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나라에서는 폭력적 민중 미술이 만들어졌다. 정서적 교감보다는 사회적 교화가 시급했던 시점이다. 80년대의 민중 미술은 폭력성이 가미되어 보통의 감수성이라고 하기엔 2% 부족해 보인다. 지나친 폭력성이 보통 사람의 눈에 오히려 역효과를 주었다. 극렬하게 대비되는 사회성이 서정적으로 전파되어야 했음에도 그러하지 못했다.
70년대까지 서민의 방안을 장식했던 밀레 그림의 캘린더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서정적이고 목가적이라고 해석했던 그런 그림들이 어느 날부터 억압받는 민중의 그림이라고 알려지면서부터이다. ‘이삭 줍는 여인’은 봉건 영주에게 작물을 다 빼앗겨 이삭을 주워서 끼니를 연명해야 하는 모습으로, ‘만종’은 복된 하루에 감사기도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 연장의 꿈으로 해석되었다. 밀레는 우리 사회의 갈등에 쫓겨났고 그 자리를 아무 의미 없는 풍경화와 예쁘기만 한 정물화가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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