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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최근 민주당 지도부 가운데 한 사람과 점심식사를 함께 한 일이 있다. 이어 곧바로 ‘민본21’ 소속 모 의원과는 저녁식사를 함께했다.
야권의 차기 유력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는 민주당 인사와 한나라당 소장 개혁파 친이계 의원은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대세론’을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 너무나 모순이 많다는 것.
사실 그들이 의문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일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동서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지난 11일 실시한 전화여론조사결과를 보자.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이고, 응답률은 19.2%다.
‘만일 2012년 대선에서 범여권 단일후보와 범야권 단일후보 간의 양자대결로 치러진다면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보수진영 단일후보’라는 응답자가 38.5%인 반면, ‘진보진영 단일후보’라는 응답이 45.5%로 약 7% 가량이나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히 이 여론조사 결과만 놓고 본다면, 대세론 후보인 박근혜 전 대표가 여권 후보로 나오더라도 야권의 단일 후보가 이겨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막상 ‘박근혜’ 라는 이름만 대입하면, 결과는 전혀 딴 판으로 나온다.
실제 보수, 진보진영을 통틀어 ‘차기 대선 후보로 누가 가장 적합한지’를 묻는 질문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율이 압도적이었다.
박 전 대표는 전달대비 지지율이 2.9% 상승해 35.2%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고, 그 뒤를 이어 지지율이 전달대비 2.2% 오른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차지했다. 하지만 그의 지지율은 고작 7.1%에 불과하다.
1위 후보인 박 전 대표와의 지지율 격차가 무려 5배에 달하는 것이다.
손 대표 이외의 나머지 다른 경쟁자들 역시 ‘도토리 후보’에 불과하다.
실제 유시민 전 장관(6.9%)이나, 오세훈 시장(6.3%), 한명숙 전 총리(4.1%), 이회창 대표(4.0%), 김문수 지사(3.7%), 정동영 의원(3.1%), 정몽준 의원(2.8%) 등은 박 전 대표와 비교할 때 그 존재감이 극히 미약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와 야권 주자들과의 가상대결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리서치앤리서치(R&R)가 지난 달 15일 전국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전화설문으로 여론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5% 포인트)를 실시한 결과, 여권 단일 후보로 박근혜 전 대표가 야권 단일 후보인 손학규 대표와 대결할 경우엔 60.5% 대 26.9%, 정동영 최고위원과는 63.0% 대 22.7%, 유시민 전 장관과는 64.0% 대 23.2%로 모두 30~40%포인트나 앞섰다.
분명히 차기 대권에서 ‘야권 단일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률이 ‘여권 단일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률보다 훨씬 높음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니, 그들이 고개를 갸웃 거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상한 현상은 총선과 관련된 여론조사에서도 나온다.
현재 정당 지지율을 보면 한나라당 지지율이 제 1야당인 민주당에 비해 압도적이다.
실제 정당지지도 조사는 한나라당이 42.2%로 민주당 24.8%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막상 ‘내년 4월 총선에서 여권후보와 야권 후보 중 어느 후보를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서는 여권후보 37.3% 야권후보 34.0%, 무응답이 28.7%로 여권후보와 야권후보가 오차범위내에서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여당 프리미엄을 10% 정도 감안할 때, 사실상 여당 후보들이 진다는 뜻이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바로 ‘박근혜 현상’ 때문이다.
많은 유권자들은 박 전 대표를 이명박 대통령과 같은 ‘한통속’으로 여기지 않고 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박 전 대표를 야권주자 범주에 놓고 ‘범야권 후보를 지지한다’고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또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에 소속해 있기 때문에 ‘한나라당을 지지한다’고 응답하지만, 막상 총선에서 ‘누구를 지지하겠느냐’고 물을 때에는 박 전 대표를 핍박한 친이계 세력들을 연상하면서 ‘야권후보를 지지하겠다’고 응답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여야 모두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승리하려면, ‘박근혜 현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박 전 대표를 당의 간판으로 내세워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당을 장악하고 있는 주류, 즉 친이계가 그렇게 되도록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민주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이명박≠박근혜’라는 등식을 만들어 친이-친박 간의 갈등을 최대한 이용하면 된다. 문제는 이같은 등식이 총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대선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야권이 대선에서 승리하려면 반대로 ‘이명박=박근혜’라는 등식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선에서 ‘이명박≠박근혜’라고 했다가 대선에서 ‘이명박=박근혜’라고 말 바꾸기를 하는 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세종시 문제에서 나타났듯이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일정하게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명박=박근혜’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이래저래 대선은 야권에게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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