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수첩’

    고하승 칼럼 / 안은영 / 2011-10-25 1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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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당 대표 시절 `수첩 공주'라는 아름다운 별명을 얻은 바 있다.

    물론 이 별명이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참여정부 당시 집권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지난 2004년 야당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깎아내리기 위해 붙인 별명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사람들 이야기를 꼼꼼히 메모하고 자신의 입장을 표명할 때마다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읽는 듯한 말투 때문에 붙여진 별명인 것 같다.

    하지만 박 전 대표가 국민의 요구를 잊지 않으려고 국민의 소리를 늘 수첩에 적었고, 항상 그 수첩을 보고 다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첩공주’라는 별명은 오히려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다.

    실제 박 전 대표는 "약속을 지키려고 국민들 만날 때마다 수첩에 꼼꼼하게 적어서 틈만 나면 들여다보고 챙겼더니 저보고 수첩공주라고 그러더라. 그런 수첩공주라면 백번이라도 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마디로 '원칙, 신뢰, 약속'이라는 단어로 표상되는 이미지가 ‘수첩공주’라는 한 단어에 함축돼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다.

    박 전 대표가 국내 유명 정치인으로는 드물게 ‘말실수’나 구설에 휘말린 적이 거의 없는 것도 수첩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신중하게 자신의 입장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수첩공주’라는 별명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당시 이해찬 전 총리가 “나는 수첩공주가 아니라, 수첩왕자”라고 스스로에게 별명을 붙였겠는가.

    그런데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25일, 박 전 대표가 나경원 한나라당 후보에게 자신의 '수첩'을 전달했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 위치한 나 후보의 캠프를 찾아 선거운동기간 중 8번에 걸쳐 서울 일대를 돌며 수렴한 시민들의 소리들, 즉 정책제안을 담은 작은 회색수첩을 전했다.

    그는 수첩을 전달하면서 "13일부터 곳곳을 다니면서 소상공인, 벤처인, 학생, 주부 등을 만나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꿈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정치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서민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정치가 불신을 받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선거 때 약속을 많이 하고 이를 안 지키는 모습이 쌓이는 것"이라며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는 복잡한 것이 아니라 약속하는 정치, 책임지는 정치"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나 후보도 서울시민들에게 어려운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텐데 그 이야기를 시정에 반영하고, 약속을 지켜줄 것으로 믿는다"며 "(시민에게) 들은 이야기 중 시정과 관계된 내용을 담은 수첩을 들고 왔다"고 말했다.

    특히 박 후보는 나 후보에게 본인이 직접 듣고 수첩에 정리한 민심들을 찬찬히 설명하기도 했다.

    박 후보는 수첩을 한장씩 넘기면서 ▲버스전용차로가 끊겨 있어 불편을 겪는 사례 ▲'워킹맘'을 위한 보육시설 확충 필요성 ▲구로디지털단지 '수출의다리' 노후화 문제 ▲노숙인을 위한 자활·자립 프로그램 ▲영·유아 무료 필수예방접종 일반병원까지 확대 ▲장애아동가정 보조금 지원 문제 등 자신이 시민들로부터 들은 요구사항들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그러면서 박 전 대표는 "꼭 지켜주시리라 믿는다"며 나 후보에게 직접 수첩을 전달했다.

    즉 선거운동 과정에 서울시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꼼꼼히 적었고, 그들의 요구를 시정에 반영하겠다고 약속한 만큼, 항상 수첩을 들여다보면서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당부인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캠프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에서도 손을 동그랗게 모아 귀에 갖다 대며 "귀를 아주 크게 하셔서 많이 듣고 어떻게든지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리가 지향해야하는 정치"라며 '약속과 책임의 정치'를 거듭 강조했다.

    사실 상당수의 국민들은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가진 박 전 대표가 ‘약속을 지키는 신뢰의 정치인’이라는 데 대해서는 별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수첩을 받은 나 후보가 그런 정치인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비록 ‘수첩’은 전달 받았지만, 복지확대를 염원하는 박 전 대표의 정신까지 이어받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어쩌면 그 수첩에 적힌 시민들의 정책제안, 그것이 박 전 대표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지만, 나 후보에게는 한낱 낙서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디 이 같은 생각이 기우(杞憂)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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