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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불법 정치자금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한명숙 전 총리가 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날 한 전 총리는 자신에 대한 두 차례 무죄 판결로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됐다며 “검찰 개혁을 위한 노력의 중심에 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약 이번 정권에서 검찰 개혁이 힘들다면 내년 정권교체로 검찰을 개혁해 민주주의와 대한민국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는 전날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에게서 9억여 원을 받은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공판에서 "금품을 전달했다는 한만호 전 대표의 검찰 진술은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으로부터 5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한명숙 전 총리를 재판에 넘겼지만 1심법원은 지난해 4월에도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당시에도 법원은 "곽영욱 전 사장의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검찰은 ‘무리한 기소’, ‘정치 검찰’이라는 비판위 도마 위에 다시 올라서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검찰은 반성하기는커녕, 되레 무죄를 선고한 법원을 향해 연일 강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실제 검찰은 전날 법원의 무죄 판결 직후 "납득하기 어려운 재판부의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라며 다소 자극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법원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서울중앙지검 윤갑근 3차장검사는 당시 기자들과 만나 "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봉사 문고리 만지기, 코끼리 다리 만지기"라며 "판결문에 '추단(推斷.미루어 판단함)'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고, 법원은 부분별로 만져보고 추단키 어렵다는 데 일부러 눈을 감으려 그런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그는 또 진술만 근거로 수사했다는 지적에 대해 "뇌물수사에서 진술 말고 뭐가 증거인가"라며 "객관적 정황이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참 가관이다.
우리나라 검사의 인식이 이 정도인지는 정말 몰랐다.
법에 문외한인 필자도 ‘증거가 없는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라는 그의 주장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더구나 증거 없이 “정황만 맞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식의 그의 반박을 보면, 검찰수사가 그동안 ‘정황 꿰맞추기’식으로 이어져 왔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것 같아 섬뜩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법원은 ‘한만호 전 대표에게서 돈이 나갔다는 사실이 곧 한 전 총리에게 그 돈이 전달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명쾌하고도, 지극히 상식적인 판단을 내렸다.
검찰이 한 전 총리를 기소하려면, 최소한 한 전 대표에게서 나간 돈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됐다는 확실한 증거를 확보했어야 했다.
그런데 검찰은 그런 증거를 전혀 제시하지 못한 채, 단지 ‘돈이 한 전 총리에게 전달 됐을 것’이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키는 ‘정황 꿰맞추기’에 급급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한 검찰 관계자는 1일 "검찰더러 '표적수사' 라는 말을 쓰던데 이번 재판이야말로 봐주기 위한 '표적판결'"이라며 원색적인 비판을 가했다고 한다.
하지만 국민의 생각은 다르다.
한 누리꾼은 “검찰이 비록 공소사실을 법원으로부터 하나도 인정받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0.6% 차이로 당선되는 데 기여했다”며 “검찰이 ‘누군가를 밀고하면 이득이 생길 수 있는 자’의 말만 믿고, 기소권을 남용한다면 대한민국의 법치는 흔들일 수밖에 없다”고 쏘아붙였다.
또 다른 누리꾼은 “‘한명숙 무죄 = 정치검찰 유죄’가 성립해야 정당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그는 검찰 관계자가 법원 판결에 대해 “결론을 미리 내고 짜맞추기 한 것 아니냐”고 불만을 토로한 것과 관련, “검찰이 주로 하는 수법임에 자연스레 터져 나온 커다란 말실수”라며 “우리는 쉽게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그들끼리는 해서는 안 되는 말이었다”고 꼬집었다.
이날 인터넷상에는 이처럼 검찰을 비난하는 글들이 봇물을 이루었지만, 검찰의 지적에 동조하거나 법원을 지탄하는 글은 좀처럼 발견하기 어려웠다.
이게 현실이다.
그러니 검찰은 이제 항소를 포기하고, 더 이상 억울한 사람을 법정에 세우는 일이 없도록 해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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