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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안철수 현상’에 직면한 한나라당의 최근 모습은 마치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를 닮았다.
실제 정치권에서는 한나라당을 향해 “사실상의 뇌사상태”라거나, “이미 집권당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식물정당”이라는 비아냥거림이 쏟아지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직후 제기된 쇄신론은 아직까지 방향조차 잡지 못한 채 오락가락하고 있다.
홍준표 대표는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낸 지 오래다.
당내 쇄신의 흐름을 이끌어온 민본21 등 쇄신파 의원들이 국정운영에 관한 이명박 대통령 사과를 요구했지만, MB는 “말 안 하는 것이 답변”이라며 무시하고 말았다.
더구나 한나라당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친이계 의원들은 “대통령 덕에 당선된 것을 잊고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쇄신파를 향해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 한나라당이 제대로 방향을 잡고 나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러자 친이계 수도권 지역 한나라당 의원 10명이 6일 모임을 갖고,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당을 해산 한 후 재창당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이날 모임에는 권택기, 김용태, 나성린, 신지호, 안형환, 안효대, 전여옥, 차명진, 조전혁 의원 등 9명이 참석했고, 원희룡 최고위원의 경우 보좌관이 대신 참석해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박근혜 전 대표의 측근인 친박계 및 MB 사과를 촉구한 소장 쇄신파와 거리를 둬온 친이계 인사들이다.
이들은 모임 직후 '대한민국과 한나라당의 미래를 걱정하며'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지금 한나라당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놓여있다"며 "당 지도부는 현실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당 지도부가 재창당의 구체적 계획을 12월 9일 정기국회가 끝나는 즉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마치 침몰하는 한나라당에서 탈출하기 위해 명분을 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한나라당은 지금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다.
그런데 누구 때문인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이 나타난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한나라당과 민주당 등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 특히 이명박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 염증, 반감 등이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 대통령은 “국회 탓”이라고 했다.
물론 ‘MB 거수기’ 노릇을 한 한나라당 의원들의 잘못이 매우 크다. 그것이 결국 기존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것이 이 대통령 자신 아닌가?
그리고 그를 추종한 친이계 세력들은 사실상 MB의 공범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그런데 그들, 바로 한나라당을 이토록 망가트린 자들이 ‘한나라당 해체와 재창당’을 요구하고 있느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그들의 요구에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히려 그들의 면면을 볼 때, ‘박근혜 흔들기’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어쩌면 이들은 이미 반박(반 박근혜) 중심에 서 있는 박세일 전 서울대 교수와도 암묵적 동의가 있었을지 모른다.
즉 박세일 전 교수가 추진하고 있는 ‘대중도신당’이 사실은 한나라당의 분당을 노린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하지만 국민들은 바보가 아니다.
지금까지의 한나라당은 사실상 친이계와 친박계가 ‘한 지붕 두 가족’처럼 지내왔고, 한나라당의 잘못은 그동안 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왔던 친이계 때문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친이계가 한나라당을 떠나 새로운 당을 만들고, 거기에 둥지를 틀더라도, 그 정당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아예 접는 게 좋을 것이다.
오히려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게 바람직하지 않겠는가.
진정으로 당의 쇄신을 바란다면, 친이계가 먼저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지역 당협위원장 자리도 기꺼이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 진정성마저 보이지 않으면서 ‘당 해체’ 및 ‘재창당’을 요구하는 것은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를 탈출하려는 쥐 떼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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