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19일 개봉하는 김명민(40), 안성기(60)의 스포츠 휴먼 '페이스 메이커'(감독 김달중)를 사전지식 없이 포스터만 보고 선택한 관객이라면, 처음부터 놀란다.
국가대표 마라톤선수들의 페이스메이커로 활동하다 퇴출된 뒤 통닭집 배달원으로 살고 있는 주인공 '주만호'가 분명히 김명민 같은데, 그 자리에는 김명민 같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큼직한 앞 윗니가 돌출한 얼굴이 토끼 같기도 하고, 말 같기도 하다.
인공치아 때문이다. 실제로 3일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당사자 김명민이 "비주얼에 좀 신경을 썼어야 했다. 너무 못생겼다. 화면에 꽉 차게 나오니 좀 부담스럽다"고 농반진반 했을 정도다. 얼굴뿐 아니다. 대사는 잘 들리는데 발음이나 말투는 물론 목소리까지 그 동안의 김명민이 아니다. 소수이지만 아쉬워하는 반응도 있다.
4일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도 화제는 인공치아였다. "124분 러닝타임 동안 주를 이루게 되는 만호의 달리는 장면을,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 문득 예전에 봤던 병든 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말이 뛸 때 가장 애처롭게 보이는 부분이 입이었다. 코로, 입으로 거칠게 숨을 내뿜으며 달리는 말의 느낌이 굉장히 강했다. 인공치아를 착용해서 그런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발음, 말투, 목소리도 철저히 계산했다. "만호는 절대 또박또박 발음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만호가 김명민의 목소리로, 김명민의 발음으로 하나하나 집어준다면 만호의 캐릭터가 살아나지 않을 거라 봤다. 내 목소리가 살릴 수 있는 캐릭터가 온다면 그때는 더 정확한 발음으로 해야겠지만 주만호는 그렇게 가야 한다고 믿었다."
인공치아가 전가의 보도는 아니었다. 괜히 '연기본좌'가 아니었다.
"물론 발음에 관해 생각해야 했다. 발음이 나빠 대사 전달이 잘 안 된다면 인공치아를 끼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생각했다. 캐릭터를 떠나 발음이 잘 전달돼야 하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시녹음 기사와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호흡을 맞췄다. 내 발음이 잘 안 들리면 바로 바로 얘기해 달라고 했고, 계속 확인해 가면서 갔다."
자신이 고집해서 착용한 것이지만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간단한 보철 치료만 받아도 며칠씩 불편한데…. "불편했다. 내가 우겼지만 사실 후회 많이 했다. 끼고 잠도 자보고, 밥도 먹어보고 했는데 내 원래 치아가 너무 시큰거렸다. 틀니도 아니고 치아 위에 그대로 끼우는 건데 딱 눌리는 압박감이 정말 심했다. 한 시간 끼고 있다가 빼도 이가 시린데 촬영 때마 대여섯 시간씩 끼고 있으려니…. 이러다 치아 망가지는 것 아닌지 걱정될 정도였다. 달릴 때도 끼고 했는데 역시 호흡이 잘 안 됐다. 침도 자꾸 고이고"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하지만 적응 못하는 것 없다고 두 달 정도 되니 다 적응되더라."
인공치아 탓 발음이나 말투의 변화를 아쉬워하는 이들에게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연기가 다 그렇지만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굳이 거기까지 가야 하느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면서도 "그건 배우가 선택하는 거다. 인공치아를 끼고 한 내 연기가 안 낀 것만 못하다는 얘기를 들어도 그건 감독의 책임이 아니다. 모두 내 책임이다. 시사회를 열고 보니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는 안 그런 사람이 더 많은 것 같아 다행스럽다."
그래도, 멋진 김명민의 모습을 기대하며 극장을 찾을 팬들에게 미안하지는 않을까. "나는 리얼리티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포스터도 그 모습 그대로 가려고 했다. 그런데 다들 반대해 인공 치아를 빼고 찍었다. 지금 보니 포토샵으로 얼굴에 살까지 붙인 것 같다. 팬들이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 이런 사람의 팬이 됐다는 걸로 감수해야 한다. 하하하."
대신, 약속했다. "다음에 백만장자나 멋있는 역할을 하게 되면 안 되는 외모지만 옷으로, 행동으로 멋있는 말투로 정말 멋진 캐릭터를 선보이겠다."
이 대목에서 김명민 캐스팅설이 나돌고 있는 SBS TV 드라마 '신사의 품격'으로 얘기가 이어졌다. 히트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작가 김은숙(39)씨와 신우철 PD가 손잡고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미중년 남자들의 로맨스를 담는다는 작품이다.
김명민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만일 하게 된다면 잘 연구해서 럭셔리하게, 0.001% 사람들의 삶을 그려보겠다"며 여지를 남겼다.
/뉴시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