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경륜을 무시 말라

    고하승 칼럼 / 진용준 / 2012-02-05 13: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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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새누리당이 공직후보자추천위원장에 정홍원 전 대한법률구조공단이사장을 내세우자 민주통합당이 공정거래위원장 출신의 강철규 우석대 총장을 공천심사위원장으로 선임했다.


    정 위원장과 강 위원장 모두 ‘저승사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정 위원장은 특수부 검사 출신이고, 강 위원장은 경제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장 출신이라는 점에서 뭔가 찜찜하다.


    이러다 양당의 공천경쟁이 18대 총선 과정을 답습하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스럽기 때문이다.


    18대 총선 당시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나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통합민주당은 모두 '비리전력자 전원 공천배제’와 텃밭인 '영호남에 대한 대대적인 물갈이’를 원칙으로 내세웠었다.


    그리고 양당은 모두 사법부 출신의 안강민(한나라당)과 박재승(민주당)을 각각 공심위원장으로 선임했다.


    당시 한나라당 안강민 위원장은 박희태 김무성 의원 등 친이계와 친박계의 상징적 거물급 인사를 비롯해 영남지역 3선 이상 70%를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렇게 해서 62명의 현역의원 중 43%에 이르는 27명이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민주당의 박재승 위원장 칼날은 더욱 매서웠다.


    그는 호남권 거물급 인사는 물론, 안희정 충남지사 등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줄줄이 낙천시키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민주당 호남 현역의원(30명)의 43%(13명)가 탈락했다.


    그 결과 양당은 좋은 성적을 거두었는가.


    아니다. 양당의 공천혁명은 참담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당시 한나라당의 '안강민 공천쿠데타’는 '친박계 대학살’로 불리면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의 반발을 초래, 결국 낙천한 친박계 국회의원 21명이 살아 돌아오는 역풍을 일으켰을 뿐이다.


    민주당의 ‘박재승 공천 쿠데타’ 역시 정치신인들을 발굴하는 효과를 냈으나 한나라당 적수가 되지 못해 곳곳에서 패하고 말았다. 심지어 당시 공천혁명의 상징이었던 박지원 의원은 무소속으로 출마, 살아 돌아오기도 했다.


    게다가 이른바 양당의 ‘공천 혁명’으로 만들어진 18대 국회의 성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실제 ‘사상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게 지금의 국회다.


    그런데 19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지난 18대 총선 때의 공천 과정을 답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양당 모두 각종 비리에 연루된 현역 의원을 배제하고 영호남 다선 중진의원들의 자진 용퇴를 촉구하는 등 대폭적인 물갈이를 추진하고 있는 게 그 때와 너무나 닮았다.


    물론 지금은 정치불신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여야 모두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고, 이명박 대토령 측근비리들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치 불신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권의 대폭적인 물갈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물갈이가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듯, 마구잡이로 칼을 휘들러서는 안 된다.


    특히 초선 의원들의 패기 못지않게 다선 의원들의 경륜과 정치적 역량도 필요한 때가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여야 일각에서는 단지 선수가 많다는 것을 이유로, 혹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불출마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이는 대단히 잘못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만 투표장을 찾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나라도 노년 인구 층이 급증하고 있다. 이른바 ‘실버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년층을 경시하는 듯한 공천이 진행된다면, 그것은 득표에 있어서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대폭 물갈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원칙이 ‘연령’이라면, 그것은 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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