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제가 지난주에 송아지를 전달하러 베트남에 갔을 때 하노이 시에 있는 크리스천 기업인들의 모임인 CBMC 조찬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기도회를 마치고 호텔에서 식사를 하면서 마침 평소에 친분이 있던 한국에서 장관을 지내고 방송국 사장도 하셨던 분을 만나 “아니 장관님은 여기 웬일이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 말씀이 한국에서 오케스트라 단원 40명과 함께 공연을 위해서 왔는데 어제 저녁에도 하노이에서 공연을 가졌는데 성황리에 마쳤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게 “목사님은 이곳에 웬일이십니까?” 하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송아지 때문에 오게 되었다고 말씀드렸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제 느낌에 무슨 대단한 일 때문에 베트남에 왔는지 알았는데 송아지 때문에 왔다고 하니까 그분이 조금은 실망스러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몽골에 갈 때는 공항에서 같이 가는 일행들과 함께 수속을 하느라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저를 알고 있는 대한항공 직원이 저를 보고 훠스트 클래스의 체크 인 하는 곳으로 가서 저 대신 수속을 해주었습니다. 자리도 앞에 좋은 자리를 주고 훠스트 클래스 라운지 이용권도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목사님 몽골에 왜 가십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나무를 심으러 간다고 하자 그 직원의 표정이 나라의 큰일을 하러 가는 줄 알았더니 겨우 나무를 심으러 몽골에 가는가 하는 실망스러운 표정이었습니다.
송아지를 전달하는 것, 나무를 심는 것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하찮은 것입니다. 그런 하찮은 일 때문에 제가 시간 내고 돈 내고 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조금은 무시하고 의외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하찮은 일을 하는 것보다 대단한 일을 하는 사람을 더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을 이장 보다는 면장, 면장보다는 군수나 도지사를 더 훌륭하게 생각하고 구의원보다는 나라 일을 하는 국회의원을 더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잡다한 일을 하는 사원보다는 사장을 더 큰 인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적은 일보다 더 큰 일을 하기를 원하고 사람들이 알아주고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다릅니다. 큰일을 하는 사람보다는 적은 일을 하는 사람을 더 인정해주고 더 생각해주는 모습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달란트의 비유로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주인의 평가에 대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을 해서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주인의 칭찬이 무엇이었습니까?
오늘 본문 21절을 보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합니다. 다섯 달란트를 남겼으니 잘 하였다고 칭찬한 것이 아니라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주인의 평가는 두 달란트를 남긴 종에게도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두 달란트 남긴 종에게도 같은 칭찬을 합니다. 두 달란트를 남겨서 잘 했다고 칭찬한 것이 아닙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합니다. 주인의 평가는 적은 일에 충성한 것, 보잘 것 없는 일에 충성한 것을 잘 하였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은 이와 같이 세상의 논리와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마태복음 25장을 조금 더 읽으면 최후의 심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서 평생을 살아온 삶을 평가받는 재판을 받게 되는데 그것이 최후의 심판입니다.
그 때 평가 기준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얼마나 큰일을 했으며 얼마나 높은 자리에 있었느냐,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느냐가 아닙니다. 지극히 작은 자에게 선한 일을 했느냐 하는 것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 밥 한 끼를 주고 목마른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 된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였으며 지구상의 심각한 문제인 식량의 문제, 다문화가정의 문제, 의료정책이나 교육의 문제, 환경의 문제 때문에 얼마나 노력하고 애썼느냐고 묻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은 일, 주위의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어보았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목마른 사람에 먹을 것을 주고, 오갈 데 없는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너무도 유치하고 적고 하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인생의 평가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이 가르치는 결론은 큰일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서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적은 일에 소홀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