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생 24살. 한국 유도의 대들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주기에는 조금 미안한 나이다. 하지만 왕기춘(포항시청)이라면 괜찮다.
약관의 나이에 이미 세계 정상권으로 우뚝 선 왕기춘은 남자 73㎏급 세계랭킹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들도 왕기춘을 2012 런던올림픽 우승 0순위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왕기춘의 올림픽 출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4년 전 ‘라이벌’ 이원희와의 치열했던 선발전으로 때 아닌 유도 붐을 일으켰던 왕기춘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엘누르 맘마들리(아제르바이잔)에게 13초 만에 한판패를 당한 것.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땀 한 방울 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정상의 자리를 내줬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이었지만 왕기춘은 갈비뼈 골절상을 안은 채 뛰었다.
왕기춘은 4년을 별렀다.
인고의 시간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짧았던 방황은 무척이나 굵었다. 2009년 10월 나이트클럽에서 불미스러운 일을 겪은 왕기춘은 “은퇴하겠다”는 말을 남긴 뒤 수일 간 잠적해 유도계를 뒤흔들었다.
어렵게 맘을 잡고 돌아왔지만 라이벌들의 성장에 혼쭐이 났다. 왕기춘은 이듬해 1월 수원월드마스터스대회에서 한 수 아래로 여겨졌던 아와노 야스히로(일본)에게 한판으로 패해 연승 행진을 ‘53’에서 마감했고 세계유도선수권과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아키모토 히로유키(일본)에게 발목을 잡혔다.
왕기춘은 모든 영광을 뒤로 하고 초심으로 돌아왔다.
대부분의 시간을 바깥이 아닌 매트 위에서 보냈다. 변화는 고스란히 호성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왕기춘은 국제유도연맹(IJF) 월드 마스터스대회와 아시아유도선수권을 연거푸 제패했다. 기대를 모았던 세계선수권에서는 16강 탈락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연말 코리아오픈 타이틀을 가져가며 상승세에 가속도를 붙였다.
왕기춘은 이번 올림픽을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준비 중이다. 은퇴를 시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벼랑 끝이라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걸겠다는 것이다.
올림픽은 정상급 선수들이 칼을 갈고 나서는 만큼 변수가 많다. 순간 방심은 곧 탈락을 의미하는 유도 종목의 특성상 더욱 그렇다. 경계대상 1호는 나카야 리키(일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계 1위를 지키던 주인공이다.
27일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런던올림픽 미디어데이에 참석한 왕기춘은 “금메달에 대한 기대가 많으신데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기대만큼 부담이 크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로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만큼 훈련을 열심히 했다. 금메달을 딸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훈련을 했다. 기대해달라”며 각오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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