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조직법 타결, 협상이냐 흥정이냐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3-03-18 15: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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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 하 승
    박근혜정부의 근간이 될 정부조직 개편안이 마침내 지난 17일 여야간 합의로 타결됐다.

    지난 1월30일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46일만이며,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21일만이다.

    비록 뒤늦은 감이 있지만, 일단 여야가 30여차례의 회동 끝에 합의를 이끌어 낸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는 바다.

    하지만 그 과정을 면밀히 살펴보면, 여야가 정부조직법을 협상 한 것인지, 아니면 흥정을 벌인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실제 전날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양당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가 2시간의 회동 끝에 20여개항을 합의했는데 그 내용이 정말 가관이다.

    정작 정부조직법과 관련된 내용은 절반 밖에 안 되고, 나머지 절반은 4대강과 국정원 댓글사건의 국정조사, 통합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자격 심사안 처리 등 정부조직법과 무관한 사항들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오히려 정치권 갈등을 부채질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여야 갈등의 불씨를 더욱 키워 놓은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우선 민주통합당은 이번 협상 과정에서 정부조직개편안의 원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과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4대강사업에 대한 국정조사를 강력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새누리당은 통합진보당 경선 부정 사건과 관련, 진보당 이석기·김재연 의원에 대한 자격 심사안을 발의하고,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15명씩 참여해 3월 임시국회에서 심사토록 하자고 요청했고, 민주당은 이를 받아들였다.

    대체 이런 사안들이 정부조직개편안과 어떤 연관성이 있기에 새 정부 출범 이후 장시간 국정공백기간을 만들면서까지 여야가 대립해 왔는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조직법 처리가 지연된 것은 정부조직법과 무관한 이런 사항들을 연계해 처리하기 위한 흥정 때문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그 후유증이 벌써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석기 김재연 의원은 18일 정부조직개편안 타결과 함께 자신들에 대한 자격심사안을 다루기로 합의한 새누리당 이한구,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특히 검찰 수사 직후 국정조사가 예고된 국정원 댓글 사건은 다시 정국현안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미 민주당은 원세훈 국정원장의 대선 등 국내 정치 불법개입 정황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마당이다. 이 사건의 파장이 얼마나 될지 현재로서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이런 사안들을 놓고 또 다시 여야가 티격태격하느라 민생을 뒷전으로 밀어 놓게 되는 것이나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미래부와 방통위의 ‘어정쩡한 동거’가 불가피하도록 만든 것도 납득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실제 최대 쟁점이었던 SO와 인터넷TV(IPTV), 위성방송 등 뉴미디어 관련 분야를 인수위 원안대로 미래창조과학부로 이관하기로 했다. 또한 골프, 바둑 등 비(非)보도 부문의 채널사업자(PP) 업무도 미래부로 넘기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해 미래부 장관이 뉴 미디어와 관련해 허가·재허가를 하거나 법안을 제정·개정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다.

    즉 여당 몫 위원 3명, 야당 몫 위원 2명 등 5명으로 구성된 방통위에서 동의하지 않으면 미래부는 뉴미디어에 대한 허가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방송의 보도·제작·편성의 자율성 보장 등을 논의하기 위해 3월 임시국회에서 ‘방송 공정성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한 것도 향후 갈등을 초래할 요소로 지목되고 있다.

    특위에서 공영방송 이사선임 등을 놓고 논쟁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특위는 그간 무용론이 계속돼 왔는데 이번에 또 다시 ‘끼워 팔기’ 식으로 새로운 특위가 만들어진다니 걱정이다.

    그래서 ‘여야의 협상 타결’이라는 반가운 소식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여야 모두 입으로는 ‘정치 쇄신’을 부르짖으면서도, 뒤로는 이처럼 중대한 사안을 놓고 흥정이나 벌이고 있으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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