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과 乙, 모두를 위한 정당은 없나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3-05-23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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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요즘 갑(甲)과 을(乙)의 관계가 정치권의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여야 모두 '갑'이 아니라 '을'의 편이라면서 민심 잡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 새누리당은 10월 재보보궐선거를 앞두고 '부자정당', '갑'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안간힘이다.

    아예 '을을 위한 정치'를 슬로건으로 내건 민주당은 한걸음 더 나아가 갑의 횡포를 막는다며 이른바 '을지로법'을 잇따라 내놓았다. 그러면서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있다.

    사실 경제민주화는 지난해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선점했던 아이템이다. 그런데 현 시점에서 민주당이 왜 경제민주화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려는 것일까?

    두말할 나위 없이 선거 때문이다.

    즉 오는 10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승리를 위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을’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을을 위한 정당’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남양유업 사태 등에서 드러났듯이 ‘갑의 횡포’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갑의 횡포’를 막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법제화 하는 등 제도적 방안이 절실하다.

    하지만, 민주당의 ‘을을 위한 정당’이라는 슬로건은 지나치게 ‘을’을 강조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사실 갑과 을의 관계는 예전부터 존재해 왔었고, 따라서 을의 아픔은 과거에도 늘 있어 왔었다.

    하지만 정치권은 그동안 을의 아픔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고, 애써 현실을 외면해 왔었다.

    그런 정치권이 이른바 ‘조폭우유’라고 불리는 남양유업 사건이 이번에 사회 이슈로 불거지자 부랴부랴 ‘상생’이니, ‘을을 위한 정당’이니 하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지나치게 전략적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모습이 ‘을’의 입장에 놓인 국민 편에서 볼 때도 그리 반가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진정성 없는 ‘정치적 모션’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당처럼 ‘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지난해 대선 때처럼 자칫 이념 논쟁에 휘말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사실 김한길 대표가 지난 5.4 전당대회에서 당 대표로 선택받은 것은 그가 이념 논쟁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중도적 입장을 취한 때문일 것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안철수 현상’을 불러 온 것도 진보와 보수의 극한 대립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이 대안으로 안 의원을 선택했기 때문
    이었다.
    그런데 ‘을’만을 위한 정당이라면, 당연히 진보 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것은 지난해 대선에서 한미 FTA 논쟁을 촉발시켰다가 패배를 자초했던 과오를 되풀이 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23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4주기를 맞아 "정당혁신과 정치혁신을 위해 노력하고 노동자, 서민, 중산층을 대변하는 `을`을 위한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 분투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이날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이 꿈꿨던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분열과 대립이 아닌 더 큰 민주당이 되어 앞으로 나갈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 선언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진다.

    ‘분열과 대립이 아닌 더 큰 민주당’의 모습을 그리겠다고 선언하면서도 정작 `을`을 위한 정당을 추진하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모순 아니겠는가.

    그래서 걱정이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을을 위한 정당’은 필연적으로 ‘갑’을 적대시할 수밖에 없고, 그것은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지도 모른다.

    앞서 밝혔듯이 갑의 횡포를 방지하긴 위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꼭 해야만 한다.

    하지만 소수인 ‘부자 갑’도 우리 국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런 면에서 '갑'도 위하고 '을'도 위하는 ‘갑을 상생의 정당’을 선언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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