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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우리 속담에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말이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산간 다 태운다’는 속담도 있다.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는 기초선거에서의 공천폐지 문제가 이 속담에 ‘딱’ 어울리는 것 같다.
민주당이 지난 25일 전체 당원을 대상으로 한 투표를 거쳐 기초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의 정당공천제도 폐지를 당론으로 확정했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폐지방침을 정한 바 있다. 따라서 이변이 없는 한 공천폐지는 국회 본회의에서 무난히 통과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걱정이다. 국민의 정당에 대한 불신에 국회의원에 대한 불신이 서로 겹쳐, 기초선거에서의 정당공천폐지 여론을 형성했고, 여야 당 지도부는 어쩔 수 없이 그런 여론에 끌려가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중앙당 지도부나 지역 원내외 위원장들이 지방선거 공천권을 행사하면서 갖가지 부패와 폐해가 따랐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 하나 때문에 정당을 공천을 아예 하지 못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까’라는 속담이나, ‘빈대 잡으려다 초가 산간 다 태운다’는 속담처럼 어리석기 그지없다는 생각이다.
우선 정당공천폐지가 정당 정치실종을 부른다는 점에서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나마 정당이 공천으로 믿을 수 있는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해 왔는데, 공천제도가 없어지면 후보들의 난립은 불가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정당공천권이 없어지면 전보다 훨씬 더 지연 혈연 학연이 판치는 선거가 될 것이란 점도 걱정이다.
실제 각종 동호회나 동창회, 향우회 등의 이름을 가진 조직을 동원할 능력을 가진 지역토호들이 유리한 선거판이 만들어 질 것이란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를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어느 정당도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더구나 현역 프리미엄으로 정당공천 폐지는 정치 신인이나 여성, 장애인 등에게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할 것이고, 결국 사회자 약자들의 진출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점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지역의 몇몇 세력이 선거판을 좌지우지 할 수 있으며, 공천제가 내천으로 연결될 경우 오히려 공천제보다 더 큰 비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고 있는 것 같다.
공천제가 돌이킬 수 없는 문제라면, 당연히 폐지해야 한다. 그러나 일부 법개정을 통해 충분히 보완 할 수 있는 문제라면, 정당 책임정치를 위해서라도 그를 보완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더구나 공천폐지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들이 공천제 존속으로 인한 문제보다 더 심각하다면, 폐지보다는 현 제도를 보완 손질하는 쪽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비겁한 거대 여야 정당 지도부는 이렇듯 뻔히 예상되는 문제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여론에 떠밀려가고 있으니 답답할 뿐이다.
훗날 역사가 지금의 여야 당 지도부 때문에 우리나라의 지방치가 후퇴했다는 비난을 받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러는가.
공천을 폐지하든 아니면 존속하든, 그에 따른 문제를 충분히 검토한 후에 결정해도 될 일이다. 그런데 이렇듯 서두르는 것은 아무래도 여야 당 지도부의 실적주의가 한 몫을 하는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번 공천폐지 문제가 ‘포퓰리즘’이라는 역사적 비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여야 지도부가 진지하게 이 문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민주당이 전당원투표를 통해 이를 당론으로 결정한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마땅히 있어야할 공청회와 토론회가 지나치게 형식적이었다는 점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래서 당 지도부가 당론을 이미 결정해 놓고 공청회와 토론회를 형식적으로 진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이 만일 당론을 결정한다면, 이런 예상되는 문제들을 충분히 국민과 당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공청회와 토론회를 거쳐주기 바란다.
꼭 내년 지방선거가 아니라 다음 지방선거 때 공천폐지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분명한 것은 양당 지도부의 실적 욕심 때문에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백년대계를 그르칠 수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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