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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고하승
새누리당 지도부가 10일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에서 대리투표를 한 당원들에게 무죄 선고를 내린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필자는 행정과 입법, 사법 등 3권이 엄연히 분리된 상태에서 새누리당이 사법부의 판결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질책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번 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다. 이번 사법부의 판결이 국민의 상식과 너무나 어긋날 뿐만 민주주의 기본원리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앞서 검찰은 통진당원 최씨 등 45명에 대해 지난해 3월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 후보 경선의 전자투표 과정에서 다른 선거권자들로부터 인증번호를 알아내 투표시스템에 접속해 대리투표를 한 혐의 등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그리고 검찰은 지난달 열린 최씨 등 45명에 대한 결심공판에선 가담 정도에 따라 벌금 200만원~징역 1년을 구형했었다.
그런데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송경근)는 지난 7일 이들 전원에 대해 45명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고 말았다.
그 이유가 참으로 해괴하기 그지없다.
재판부는 당내 경선의 경우 정당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공직선거에서의 보통·직접·평등·비밀 투표라는 4대 원칙이 그대로 준수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헌법에 규정된 국회의원 및 대통령 선거에 대한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 등 4대 원칙이 명시돼 있지만 당내 경선에 대해서는 이런 규정이 없다는 것이다.
좀 과장되게 말하자면 당내 경선규정에 선거 4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규정이 없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것 아니겠는가.
심지어 피고인들 대부분 부모·자식 관계나 부부, 형제, 지인 등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들로 특별한 사정으로 투표권을 위임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즉 '위임에 따른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에 해당하므로 업무방해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야 된다고 하지만 이건 국민의 상식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 등 헌법상 투표 기본 4대 원칙은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통상적으로 지켜지고 있다. 또 그것이 국민이 알고 있는 선거와 관련된 기본적인 상식이다.
실제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도 대리투표라는 건 없다. 아마 초등학교 반장선거에 학생의 학부모나 형제, 지인 등이 대리투표를 했다면, ‘부정선거’라며 난리가 났을 것이다.
교내 반장 선출 규정에 그런 조항이 명시되지 않았다고 해서 대리투표를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사실 반장선거에 그런 조항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학교가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 아마도 손꼽을 정도에 불과할 것이다. 그래도 모든 학교에서는 반장선거 때 그런 선거의 기본원칙을 지키는 것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다.
이처럼 초등학교 반장선거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라면 정당의 당내 경선에도 적용돼야 한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이다.
광주지법 등 6개 법원에서 동일한 범죄에 대해 “헌법에 규정된 민주주의 선거의 기본 원칙은 근대 선거제도를 지배하는 원리로, 간접적으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당내 경선도 예외는 아니다”며 대리투표를 한 11명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것도 그런 상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진보당의 당내 경선 부정은 누가 봐도 과거 당권파들의 ‘조직적 행위’로 인한 것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데 왜 유독 서울중앙지법만 해괴한 논리로 무죄판결을 내린 것인가.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혹시 종북 세력을 지지하는 판사가 섞여 있는 게 아닌지 걱정스럽다.
만일 이 같은 국민상식에 반하는 판결을 대법원에서 바로잡지 못한다면, 앞으로 공직후보를 선출하는 각 정당의 당내 경선에 불법 대리투표가 만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린 학생들의 반장 선거에서도 어떻게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확산될지도 모른다.
그런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대법원의 현명한 판단을 주문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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