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각 정당이 기초지방자치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해 공천폐지를 검토할 때에 필자는 ‘정당 책임정치’ 등을 이유로 반대의견을 제시했었다.
정당이 공천과정을 통해 후보가 제대로 된 인물인지 여부를 검증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이 ‘정당의 책임정치’이기 때문이다.
특히 장애인, 여성, 정치 신인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의 지방정계 진출을 위해서라도 공천은 반드시 필요한 제도라는 게 필자의 판단이었다.
새누리당은 이런 의견을 받아들여 공천폐지 방침을 철회하고, 상향식 공천방식으로 선회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은 이런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무공천’을 선언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새정치민주연합 김한길 안철수 공동위원장이 ‘무공천 백지화는 없다'고 거듭 천명했음에도 민주당 내에서는 무공천 철회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심지어 박지원 의원과 이원욱 의원 등은 신당 통합 완료 이후 무공천 백지화 가능성을 시사 하고 있는 실정이다.
줄곧 공천폐지에 반대했던 필자로서는 민주당 내부의 이 같은 목소리가 반가울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공천폐지문제를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유불리 문제로만 보고 손익을 따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문재인 의원은 "민주당만 무공천을 할 경우 일방적인 선거결과가 우려된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같은당 박지원 의원도 "새누리당이나 다른 야당은 공천을 하는데 우리 민주당만 2번 없는 선거를 치르면 거기에서 오는 불이익은 누가 말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적 견해를 피력했다.
즉 무공천을 하면 불이익이 오기 때문에 공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좋은 선거 결과를 위해, 혹은 불이익을 피하고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공천을 해야 한다는 주장인 것이다.
자신들의 당파적 이익을 위해 공천을 해야 한다는 이 같은 주장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공천을 재검토해야 하는 핵심 포인트는 그게 아니다.
무공천이 민주주의의 토대를 파괴할 위험한 선택이기 때문에 공천을 실시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정당정치이자 의회정치인데 기초공천제 폐지는 이를 무력화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공천을 실시해야 한다는 말이다.
정당 공천을 폐지할 경우, 정당의 기층 조직은 순식간 무너질 수밖에 없다. 특히 지방자치의 관료화 및 토호화 등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지방정계에 진출할 기회는 원천적으로 차단당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 민주당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늦었다.
왜냐하면, 새누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을 파기하면서 공천실시의 불가피성을 역설할 때 이런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왔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당도 못 이기는 척 따라 갔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민주당은 그렇게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눈치를 보느라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기초선거 무공천’을 통합신당 제 1명분으로 내세우는 우(愚)를 범하고 말았다.
따라서 이제 와서 무공천 백지화를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도로 민주당’이라는 국민의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만에 하나 신당 통합 작업이 마무리 된 뒤에 민주당 내 친노계 등 강경파들이 안철수 의원을 압박해 무공천 백지화를 관철시킬 경우, 신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미래는 더 이상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한 비주류 김부겸 전 의원이 "지금 와서 다시 뒤집는다면 국민들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나, 새정치연합 김효석 공동위원장이 "당장 선거의 유불리를 따져서 우리가 불리하다고 약속을 뒤집는 것이 새정치는 아니다"라고 언급한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6.4 지방선거 이후에 예정된 7.30 재보궐선거와 차기 총선, 나아가 대선까지 바라보려면 비록 이번에는 조금 손해 보는 한이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무공천을 고수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