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일보=박기성 기자] 세월호 침몰사건에 대한 해경의 부실한 초동대처 논란이 제기되자 해경이 28일 15분여간의 짧은 기자회견을 통해 첫 구조활동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내용으로 적극 해명에 나섰지만, 오히려 실종자 가족들의 분통을 샀다.
이는 세월호 참사 첫 구조활동에서 참가한 해경 관계자 증언을 통해 이같이 해명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책임 회피 또는 면피용 언론플레이로 비쳤기 때문이다.
해양경찰청은 세월호 침몰사건 12일째인 28일 오전 11시 진도 연안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위치한 서망항 선착장에서 해경123호 경비정 소속 해경 관계자에 대한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기자회견은 세월호 침몰 당시 사고 해역에 처음으로 도착해 구조활동에 나섰던 해경123호 경비정 소속 A 모 함장을 비롯해 모두 4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출동당시 어떤 상황이라고 보고 받았냐'는 질의에 "오전 8시57분께 상황실을 통해 여객선 사고 접수를 받았다."며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30분이었다. 약 400~500명의 승객이 있다고 보고 받았으며 선체가 좌측으로 40~50도 정도 기울고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퇴선 명령에 대한 방송 여부에 대해 "우리 단정(경비정) 방송 장치를 통해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에 뛰어내리십시오. 그리고 퇴선해 주십시오'라고 30분부터 35분까지 방송한 것 같다."며 "방송 듣고 한 3~4분 후에 좌현 함미쪽 거기서 사람이 보여가지고 저희 단정이 최초로 가서 먼저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영상에는 방송 소리가 안들린다. 편집했냐'는 질의에 대해 "방송은 (함장인)내가 직접했다. 동영상은 편집없는 그대로다. 짤막짤막하게 찍혀서 소리가 안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고 당시 선내 진입을 시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우리 배 기울기 각이 세월호 현측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시간이 10분 정도 지난 뒤 각이 70도 이상 되어서 선내로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 현장에 가면서 세월호와 교신 여부에 대해 "저희들은 그때 교신을 못했다. 왜냐하면 9시부터 교신을 했지만 그때 (세월호에서 응답이)안 나오길래, '지금 교신할 상황이 아니다' 판단해 이후 주파수를 이용해서 (주변)어선을 총동원하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뒤 한 20분 후 9시40분~50분 사이에 어선들이 약 30~40척 왔다. 그때 어선들이 많이 와서 도와줬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선체에 진입해서 적극적으로 승객 대피 유도했느냐는 질의에 "이 모 경사가 조타실 밑 세창에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망치와 도끼를 가지고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7명의 인원을 구조했다. 당시 유리 파편이 튀어서 해경들이 다쳐 병원에도 다녀왔다."며 상흔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세월호 침몰사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보다는 처해진 상황에 맞춰 구조활동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특히 인터뷰 시간은 15분을 넘지 못했으며 짧은 인터뷰 시간을 지적하는 항의에 대해서도 "사고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하다 급히 들어온 것"이라며 추가질문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자회견을 한 방송사의 생방송 중계로 지켜본 실종자 가족들은 하나같이 분노하며 오열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언론과 인터뷰 하는 시간에 바다에 나가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며 화를 참지 못했다.
오히려 "검찰이 수사하니까 살길만 찾는다"며 "지네들만 살라고 언론플레이 한다"고 성토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 한 명은 세월호 선장인 것을 몰랐다는 해경 관계자의 인터뷰가 나오자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수학여행 보낸 부모가 잘못한 거 아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는 세월호 참사 첫 구조활동에서 참가한 해경 관계자 증언을 통해 이같이 해명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에게 책임 회피 또는 면피용 언론플레이로 비쳤기 때문이다.
해양경찰청은 세월호 침몰사건 12일째인 28일 오전 11시 진도 연안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위치한 서망항 선착장에서 해경123호 경비정 소속 해경 관계자에 대한 기자회견을 실시했다.
기자회견은 세월호 침몰 당시 사고 해역에 처음으로 도착해 구조활동에 나섰던 해경123호 경비정 소속 A 모 함장을 비롯해 모두 4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출동당시 어떤 상황이라고 보고 받았냐'는 질의에 "오전 8시57분께 상황실을 통해 여객선 사고 접수를 받았다."며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30분이었다. 약 400~500명의 승객이 있다고 보고 받았으며 선체가 좌측으로 40~50도 정도 기울고 있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들은 퇴선 명령에 대한 방송 여부에 대해 "우리 단정(경비정) 방송 장치를 통해 '승객 여러분 총원 바다에 뛰어내리십시오. 그리고 퇴선해 주십시오'라고 30분부터 35분까지 방송한 것 같다."며 "방송 듣고 한 3~4분 후에 좌현 함미쪽 거기서 사람이 보여가지고 저희 단정이 최초로 가서 먼저 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동영상에는 방송 소리가 안들린다. 편집했냐'는 질의에 대해 "방송은 (함장인)내가 직접했다. 동영상은 편집없는 그대로다. 짤막짤막하게 찍혀서 소리가 안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들은 사고 당시 선내 진입을 시도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도 "우리 배 기울기 각이 세월호 현측 밑으로 들어가 버린다. 시간이 10분 정도 지난 뒤 각이 70도 이상 되어서 선내로 올라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 현장에 가면서 세월호와 교신 여부에 대해 "저희들은 그때 교신을 못했다. 왜냐하면 9시부터 교신을 했지만 그때 (세월호에서 응답이)안 나오길래, '지금 교신할 상황이 아니다' 판단해 이후 주파수를 이용해서 (주변)어선을 총동원하라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뒤 한 20분 후 9시40분~50분 사이에 어선들이 약 30~40척 왔다. 그때 어선들이 많이 와서 도와줬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들은 선체에 진입해서 적극적으로 승객 대피 유도했느냐는 질의에 "이 모 경사가 조타실 밑 세창에서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우리가 망치와 도끼를 가지고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7명의 인원을 구조했다. 당시 유리 파편이 튀어서 해경들이 다쳐 병원에도 다녀왔다."며 상흔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들은 인터뷰 내내 세월호 침몰사고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기 보다는 처해진 상황에 맞춰 구조활동에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특히 인터뷰 시간은 15분을 넘지 못했으며 짧은 인터뷰 시간을 지적하는 항의에 대해서도 "사고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하다 급히 들어온 것"이라며 추가질문을 거부했다.
그러나 이같은 기자회견을 한 방송사의 생방송 중계로 지켜본 실종자 가족들은 하나같이 분노하며 오열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언론과 인터뷰 하는 시간에 바다에 나가 구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며 화를 참지 못했다.
오히려 "검찰이 수사하니까 살길만 찾는다"며 "지네들만 살라고 언론플레이 한다"고 성토했다.
특히 실종자 가족 한 명은 세월호 선장인 것을 몰랐다는 해경 관계자의 인터뷰가 나오자 "잘못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으니 수학여행 보낸 부모가 잘못한 거 아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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