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7년 청량리 세종대왕기념관 앞뜰에 있는 '세종성왕 기념탑'의 모습. |
▲ 경희의료원 뒤편에 위치한 '연화사'에서 열리는 연등축제의 모습. |
영휘원~세종대왕기념관~연화사 코스
3시간 소요… 홈페이지에 이달말 소개
명성황후능 있던 홍릉숲 단체관람 무료
한글날엔 세종대왕기념관 행사 더 풍성
[시민일보=서예진 기자]서울 동대문구(구청장 유덕열)는 올해부터 경쟁력 있고 특색있는 관광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지역내 명소를 테마별로 묶어 하루 동안 걸어서 다닐 수 있는 관광코스를 개발해 지난 6월부터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있다.
구에서 개발한 첫번째 코스로는 ‘한방과 함께 느끼는 건강체험 코스’가 있으며, 두번째 코스로는 ‘자연과 함께하는 도보여행 코스’가 있다.
그리고 이번에 소개되는 세번째 코스는 ‘선조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는 조산왕실의 삶 코스’로 소요시간은 약 3시간 정도다.
이 코스는 동대문구의 대표적인 문화재를 연계 코스로 개발해 구 홈페이지에 이달 말 소개할 예정이다. 코스는 영휘원·숭인원~세종대왕기념관·홍릉 숲~연화사가 있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이 이 코스를 걸으며 조선왕실의 삶을 접하고 그 시대의 문화를 배움과 동시에 걷기운동으로 건강까지 챙길 수 있다면, 구에서 이 코스를 조성한 목적에 들어맞는 경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지면을 통해 이곳을 걸어보도록 한다.
■영휘원·숭인원(문화재 사적 제361호, 소요시간 40분)
청량리역 앞으로 약 1㎞를 지나오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홍릉길로 접어든다. 이곳에는 조선 제26대 임금이었던 고종의 후궁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의 묘소인 영휘원(永徽園)과 그 손자 이진의 묘소인 숭인원(崇仁園)이 5만5015㎡ 규모로 들어서 있다.
경내에는 문인석(文人石), 망주석(望柱石), 장명등(長明燈), 정자각(丁字閣배) 등이 남아 있어 1991년 10월 사적 제361호로 지정됐다.
영친왕 이은의 생모로 명성황후가 시해된 뒤 후궁이 된 황귀비는 신교육에 관심을 쏟아 진명여학교 설립 등 근대사학 발전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황귀비는 1910년 막대한 토지를 기증해 재단을 재정비하고 학교 명칭을 숙명으로 개명했는데 이 학교가 바로 현재 존재하는 숙명여자대학교의 전신이다. 황귀비는 궁녀들을 숙명여학교에 입학시켜 근대교육을 받도록 했다.
숭인원에 안장된 영친왕 이은의 장남인 이진(1921~1922)은 일본에서 탄생해 이듬해 부모와 함께 조선을 방문했다가 귀국을 하루 앞두고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덕수궁 석조전에서 의문사한 비운의 원손이다.
영휘원·숭인원은 하절기(2~10월)에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1월)에는 오전 9시~오후 5시30분에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연중 만 19~64세 1000원, 10인 이상 단체는 800원에 입장이 가능하다.
■세종대왕기념관(소요시간 30분)
영휘원·숭인원과 담벼락을 사이에 두고 세종대왕의 여러 업적과 역사를 접하고 학습할 수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이 자리잡고 있다. 1만8512㎡ 규모의 대지에 연면적 2475㎡, 2층으로 지어져 세종대왕의 일대기, 한글, 과학진열, 국악실 등 4개의 전시실과 강당, 열람실 등으로 구성된 이 기념관은 1973년 한글날 개관했다.
일대기실에는 세종대왕의 어진(御眞)과 함께 재위 32년 동안의 업적을 14폭의 동양화로 제작해 진열하고 있으며, 한글실에는 세종 당시와 세종 이후의 한글관계 문헌을 진열 전시하고, 훈민정음 창제의 참고 문헌 및 외국 문자의 탁본, 한글 기계화 관계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과학실에는 세종시대의 조판·인쇄 과정을 재현시킨 활자관계 유물을 비롯해 측우기, 해시계, 물시계 등의 발명품과 여러 천문기구 및 지도·한약재 등을 진열하고 있다. 국악실에는 세종시대에 정비된 각종 국악기와 악사 복식 및 무용 복식, 진연청도 등을 전시하고 있다.
현재 기념관이 소장하고 있는 보물은 능엄경언허(보물 제763호), 몽산화상법어약록언해(보물 제769호), 금강경삼가해(보물 제772-1호), 복각천상열차분야지도(보물 제837호), 수표(보물 제838호) 등이 있으며, 세종대왕신도비를 비롯한 구영릉 석물 12기가 2002년 3월 1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2호로 지정돼 있다.
세종대왕기념회관 관계자에 따르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전국 글짓기 대회가 개최되는 매년 5월15일(세종대왕 탄신일)과 한글글꼴 공모전, 한국문화상품아이디어 공모전, 외국인 한글 쓰기 대회 등이 개최되는 10월9일(한글날)에 맞춰 방문하면 더욱 의미가 있다고 한다.
세종대왕기념관은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9시~오후 5시30분에 휴관일인 월요일, 신정, 설, 추석을 제외하고 연중 어른 2000원, 학생(유아포함) 1000원에 입장 가능하다. 단 48개월 미만의 유아와 65세 이상 노인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홍릉(명성황후의 능) 숲
세종대왕기념회관을 나와 큰 길을 건너면 1922년 우리나라 임업시험장이 설립되면서 조성된 최초의 제1세대 수목원인 ‘홍릉 숲’이 나온다. 지금 ‘홍릉 숲’이 위치한 자리에는 조선왕조 고종의 왕비인 명성황후의 능이 있었다.
명성황후의 능을 ‘홍릉(洪陵)’이라 하는데, 숲의 이름도 능의 이름을 따서 붙여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풍수지리상 이곳이 불길하다고 해 1919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으로 옮겨 고종의 무덤에 합장돼 현재 홍릉 숲에는 이장되기 전 홍릉의 터만 표시돼 있다.
이 ‘홍릉 숲’은 국립산림과학연구원의 부속 전문 수목원으로써 국내외의 다양한 식물 유전자원을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해 기초 식물 학문분야 발전은 물론 식물 유전자원 확보를 위해 조성한 시험 연구림이다.
‘홍릉 숲’과 산림과학관은 매주 토·일요일은 일반인에게, 평일에는 학생 단체관람객에게 무료로 개방해 자연 및 학습 환경, 산림의 소중한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단 참가인원이 제한돼 있어 평일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하절기(3~10월)에는 오전 10시~오후 5시, 동절기(11~2월)에는 오전 10시~오후 4시 매주 토·일요일에만 무료로 개방한다.
■연화사
‘홍릉 숲’을 돌고 나와 회기동 경희의료원 뒤편으로 들어서면 지금으로부터 510여년 전 연산군 때 지어진 ‘연화사(蓮華寺)’라는 사찰이 나온다. 연화사라는 이름은 '일체중생의 근본 자성이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청정한 연꽃과 같다'는 의미에서 따온 것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의 청정법신이 머무는 곳이 연화장 세계이므로 이를 따라 연화사라 했다고도 한다.
‘연화사’는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의 회묘를 회릉으로 승격시킬 때 함께 조성된 능의 원찰로 출발했다고 전해진다. 원찰이란 불교가 전래된 삼국시대 이후 주로 왕실을 비롯한 귀족층의 발복이나 기원을 빌어주던 사찰을 총칭한다.
‘연화사’는 이후 연산군의 폭정으로 각지의 사찰이 파괴되면서 사라졌다가 1725년(영조 1년) 천장산에 경종과 그의 계비 선의 왕후 어씨가 안장된 의릉을 만들면서 이 절도 복구돼 의릉의 원찰이 되었다.
■그 외 방문할 만한 다른 곳
앞서 구에서 소개한 첫번째와 두번째 코스도 각각 개성있는 테마를 가지고 있어 가볼 만 하다.
첫번째 코스인 ‘건강체험 코스’는 동대문구의 명물, 서울약령시를 중심으로 짜여진 코스로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서울약령시~보제원 터~경희대학교 한의학역사박물관 순으로 이어진다.
서울약령시는 전국 한약재의 70%가 유통되는 곳으로 조선시대 효종이 귀한 한약재 수집을 위해 주요 약재 생산지에 관찰사를 상주시키고, 이곳을 약재상 집결지로 만들었다. 이 근방에는 우리 선조들의 우수한 한의약 문화의 보존·계승·발전을 위해 조성된 서울약령시한의약박물관도 있다.
두번째 코스인 ‘도보여행 코스’는 배봉산근린공원~장안동 벚꽃길과 중랑천 체육시설~청계천 순으로 이어진다. 일상 속에서 휴식을 찾을 수 있는 녹지공간과 그곳에 있는 문화유적을 연계한 힐링을 테마로 했다.
배봉산근린공원은 숲속 작은도서관과 어린이 놀이터, 운동기구 등을 갖춰 휴식을 즐기며 운동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이다. 특히 배봉산에는 사도세자의 묘인 영우원 터와 수빈 박씨의 묘 휘경원 터가 있는 등 조선시대 문화유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또한 이외에도 조선 초부터 농업과 관련있던 고대 중국의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의 제사를 지내던 ‘선농단(先農壇)’, 신라 말엽에 창건됐으며 일제강점기 시절에 많은 애국지사와 고승의 발길이 끊기지 않았던 ‘청량사(淸凉寺)’ 등이 있다. 특히 이 시기에 독립운동과 불교운동에 앞장선 만해 한용운 선생이 한때 청량사에 머물렀다고 하며, 1939년 7월12일에 한용운 선생의 회갑연이 이곳에서 조촐하게 열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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