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라시가 ‘대통령제 폐해’의 근거?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4-12-09 15: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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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국장 고하승


    지난 1월 작성된 '정윤회 국정 개입 의혹' 청와대 문건의 정보출처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지난 9일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경정과 제보자인 박동열 전 지방국세청장 및 출처로 거론된 김춘식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실 행정관 등 3명을 불러 3자 대질조사를 벌였다.

    그런데 정말 가관이다. 먼저 박관천 경정의 진술내용을 살펴보자.

    그는 “여러 정보가 대강 다 맞아 박동열 전 청장 얘기대로 문건을 썼다”고 주장했다.

    즉 박동열 전 청장이 김춘식 행정관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라며 자신에게 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보고서를 섰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춘식 행정관은 “박 전 청장에게 관련 사실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며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완강하게 부인을 하고 있다.

    박동열 전 청장도 김춘식 행정관한테 들은 얘기가 아니라 시중에 떠도는 여기저기에서 주어들은 얘기를 이야기한 것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결과적으로 박동열 전 청장이 누군가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모아서 박 경정에게 전했고, 박 경정은 이런 이야기들을 가지고 문건을 작성했다는 뜻이다.

    따라서 문건의 신빙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박 경정은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문건을 작성하기 전에 복수의 정보소스를 확보하고, 그 정보의 진위여부를 파악을 하기 위해 자신이 확보한 소스를 서로 대조, 비교하는 작업을 했어야 옳았다.

    사실 언론사에서도 유능한 기자(記者)는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만 가지고 기사를 작성하지는 않는다. 그 정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복수의 취재원으로부터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크로스 체크’하는 것은 기본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영상정보나 음성정보와 같은 과학적인 소스까지 미리 확보해 둔다.

    하물며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정보를 취급하는 경찰간부 출신의 행정관이 그런 기본적인 사항조차 지키지 않았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부주의가 결과적으로 ‘지라시(사설 정보지)’를 양산해 냈기 때문이다.

    또 세계일보가 처음에 이 사건을 보도했을 때 가장 눈길을 끌었던 부분이 강남 J 모 식당에서 이른바 ‘십상시’와 정윤회 씨의 회동내용이었다. 만일 이것이 ‘팩트’라면 나머지 다른 부분도 팩트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나온 정보의 소스를 따져보니까 강남에 있는 J 모 식당에서 회동도 팩트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특히 문건 내용 중에는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담겨있다.

    실제 문건에는 정씨가 지난해 말 소위 '십상시'와 가진 송년 모임에서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에 대해 “근본도 없는 놈이 VIP(대통령) 1명만 믿고 설치고 있다. VIP의 눈 밖에 나면 한칼에 날릴 수 있다'고 정씨가 말한 것으로 돼 있다. 안 비서관(안봉근 제2부속 비서관)이 적당한 건수를 잡고 있다가 때가 되어 내가 이야기하면 VIP께 보고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말한 것으로 돼 있다.

    그런데 세계일보는 이정현 의원을 7년간 보좌했던 한 청와대 행정관을 '십상시' 중 한 명으로 지목했었다.

    바로 음종환 행정관이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당시 음 행정관은 이정현 수석을 보좌하고 있었으며, 그는 18대 국회에서도 이정현 의원의 보좌관을 지낸바 있다. 지금도 이정현 의원의 사이는 매우 끈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정윤회씨가 음종환 행정관 앞에서 그런 막말을 했을 리 만무하다. 그건 상식 아니겠는가.

    이정현 최고의원도 “사실이 아닌 것들이 계속 부풀려서 보도되고 있다"고 일축했다.

    한마디로 정국을 온통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윤회 문건’은 시중에 떠도는 여러 풍문들을 모은 소설 같은 이야기에 불과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검찰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온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해 볼 때, ‘정윤회 문건=지라시’라는 결론이 불가피해 보인다.

    따라서 이를 빌미로 ‘제왕적 대통령제 폐해’ 운운하며, 분권형 개헌을 요구하는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친이계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 같다.

    그나저나 검찰수사결과 정윤회 문건이 ‘지라시’라고 밝혀질 경우, 이를 근거로 개헌을 요구하던 개헌론자들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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