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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인근 |
청렴이란 무엇일까? 나는 과거의 사례를 통해 청렴의 의미를 다시금 깨우치고 청렴의 일반적인 의미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다른 의미도 부여하고 싶어 옛 사례를 찾아 이야기를 풀어놓으려 한다. 그 중에서도 전문성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다음은 김종직이란 인물의 일화이다.
조선조 성리학 도통의 정맥으로 추앙받았던 김종직. 밀양출신으로 그의자 는 계온(季)이고, 호는 점필재( 畢齋)이며,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세종 13년(1431)에 태어난 김종직은 28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3년간 사가독서를 하다가 세조 8년(1462)에 승문원박사로 예문관 봉교를 겸하면서 관직에 나아갔다
그가 함양군수로 재직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함양군에서는 해마다 임금에게 차(茶)를 바쳐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고을에서는 차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차를 바치라는 명이 거두어지지 않았고, 백성들은 자신에게 부과된 공납을 거부할 수 없었기 때문에 할 수없이 비싼 돈을 주고 사서 바칠 수밖에 없었다.
함양군수로 부임해 온 김종직은 그 폐단을 발견하고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고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삼국사(三國史)』를 열람하던 그는 신라 때 당나라에서 차의 종자를 얻어다가 지리산에 심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고을 함양이 이 산 밑에 있으니 어찌 신라 때에 남긴 종자가 없겠는가?"하고는, 몸소 여러 늙은이들에게 찾아 가서 물어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리저리 수소문을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김종직은 과연암천(巖川) 북쪽 대밭 속에서 차 종자 몇 떨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명하여 고을에 차밭을 일구게 하였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차밭은 크게 번성했다.
부당한 공납 부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던 백성들을 위해 직접 차 종자를 얻어 폐단을 해결한 것은 관리로서의 그의 유능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일화이다.
위 일화를 보면 공직자의 올바른 예를 보여준다. 이렇듯 청렴이란 흔히들 알고 있는 탐욕이 없는 바람직하고 깨끗한 공직자만을 이야기 하는 것도 있는 반면 전문성을 갖추고 소신껏 맡은 바 임무에 책임감을 가진 능력 있는 사람이 이 시대의 바람직한 청렴한 인물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다.
시대적 흐름을 알고 나의 능력은 어떠한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있어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가? 다시금 생각해보고 전문성을 갖춘 청렴한 공직자로 탈바꿈 하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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