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재 전 특보의 꿈

    고하승 칼럼 / 고하승 / 2016-02-04 23:58:04
    • 카카오톡 보내기
    편집국장 고하승


    그를 만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0여 년 전이다.

    당시 그는 각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인기가 있었다. 아마도 거침없이 쏟아내는 그의 발언들 속에서 중요한 뉴스의 소재들을 찾을 수 있었던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들이 무수히 많지만 그처럼 자신의 속내를 감추지 않고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도 드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필자의 취향은 아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기자답지 않게 평소 조용한 성격의 필자가 호탕한 성격의 그에게는 탐탁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다보니 그 많은 세월동안 둘이 만난 횟수는 손꼽을 정도다.

    그러던 어느 날 ‘DJ(김대중) 맨’으로 분류되는 그가 지난 대통령 선거 당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필자가 지칭하는 그는 바로 김경재 전 청와대 홍보특보다.

    한때 동교동계로 분류되던 김 전 특보는 어느 사건을 계기로 동교동계와 거리를 두게 되었지만 그가 ‘DJ맨’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실제 그는 지난 1970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첫 대선 도전 당시 캠프에 합류해 DJ를 도왔으며, 이후 DJ의 두 번째 도전 때도 적극 도왔다. 그러다 이른바 ‘양김 단일화’당시 동교동에서 유일하게 김영삼 후보의 양보를 주장하게 됐고, 그로 인해 당시 김옥두 전 의원과 멱살잡이를 하는 사건까지 벌어지게 됐다. 그러나 DJ의 대선 삼수 때에도 캠프에 홍보본부장으로 합류해 결국 DJ 당선의 일등공신이 됐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어쩌면 ‘영원한 DJ맨’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 박 대통령의 대선후보 기획특별보좌역을 맡았다. 작년 2월부터 12월까지는 박근혜 대통령 밑에서 장관급인 청와대 홍보특보를 지내기도 했다.

    한마디로 ‘DJ맨’이 ‘박근혜의 남자’로 변신한 셈이다. 그로인해 20대 총선에선 그가 어떤 형태로든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자유총연맹 회장 선거 출마라는 의외의 길을 택했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보단체인 자총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굳이 그런 자리에 재선 국회의원에 대통령 특보까지 지낸 그가 갈 이유는 없지 않는가. 그래서 직접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사실이었다. 출마하겠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채 며칠이 지나지 않은 지난 1일, 그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운 임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통일운동의 선봉대’이어야 할 자유총연맹에 수많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이를 바로잡는데 헌신하기 위해 출마하게 됐다"고 공식선언했다.

    그가 자총이 지니고 있는 문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을 보면, 자총 회장출마를 두고 상당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다.

    실제 그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국민운동단체로서 제 기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자유수호’가 아니라 ‘사익수호’에 급급하여 회원들의 단합을 저해하고 조직의 사기를 극도로 떨어뜨리고, 외부적으로는 실효성 없는 회원확대정책과 실적에 급급하여 연맹의 대외적 신인도를 결정적으로 추락시키고 있는 점 ▲비전과 현실인식이 부족하여 사사건건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워온 점 등 세 가지를 개혁안으로 제시했다.

    만일 그가 제시한 개혁안이 성공적으로 완수된다면 자총은 안보단체로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란 점에서 기대가 크다.

    특히 그는 최근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라는 책을 출간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상징적 인물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애를 재조명하고, 두 전직 대통령 및 지지자들의 역사적 화해와 국민 화합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는 책 머리말에서 “우리는 갈가리 찢겨진 이 사회를 통합하고 하나의 공동체를 지향하는 코드, 산업화와 민주화의 성과와 교훈을 창조적으로 융합시키는 이른바 산민통합(産民統合)을 이뤄야 한다”며 “그리고 그것은 바로 박정희와 김대중의 공통코드를 발견하는 데서 비롯된다”고 강조했다.

    어쩌면 ‘박정희와 김대중이 꿈꾸던 나라’가 곧 김경재 전 특보가 꿈꾸는 나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부디 자총이라는 안보단체가 그의 꿈, 즉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역사적 화해를 이루는 상징적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나저나 언제 한번 김 전 특보를 만나 술 한 잔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고하승 고하승

    기자의 인기기사

    뉴스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