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영화 속 왕족 망명작전의 진실은?

    영화 / 서문영 / 2016-08-21 05:5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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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덕혜옹주'의 제작진이 역사적 모티브를 직접 밝혔다.

    '덕혜옹주(감독 허진호)'는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려낸 영화로 구한말 비극의 시대를 스크린에 구현했다. 특히 영화 속 영친왕(박수영 분) 망명작전은 실제 역사 속 의친왕 망명 작전에 대한 기록을 참고로해 만들어진 것이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고종 황제의 다른 아들들과는 달리 항일 의지가 굳건했던 것으로 알려진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유학 시절부터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독립운동자금을 보태기도 했다. 그는 1919년 11월 9일 신의주를 거쳐 상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했다. 이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 대동단의 주도하에 이뤄졌다.

    그러나 의친왕은 망명에 성공하지 못하고 만주 안동현여게서 일제 경찰들에게 발각돼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상해는 물론 일본, 만주, 시베리아까지 긴급 수배령을 내렸으며, 이 사건으로 대한제국 구 황족의 한반도 내 여행의 자유는 물론 의친왕의 공 작위도 박탈됐다.

    서울신문 김을한 기자의 저서에서는 '영친왕 망명'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1927년 상해임시정부가 영친왕 부부를 유럽 여행을 빙자해 일본에서 탈출시키고 상행로 망명시키려 시도했지만 밀고자가 있어 계획에 실패했다는 기록이다.

    그러나 영화에서 재구성된 내용은 좀 더 많은 사료와 공식자료로 남아있는 의친왕 망명 작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영친왕이 아내 때문에 망명을 포기해 많은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장면은 대한제국 옛 신하들이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 졌으니 고국으로 돌아가자'는 설득 과정에서 일본인 아내 이방자 여사를 데려갈 수 없다고 하자 영친왕이 귀국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려졌다.

    영화 속에 반영된 역사적 배경 모티브를 밝히며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는 영화 '덕혜옹주'는 400만 관객을 돌파하며 전국 극장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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