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방보훈청 홍보과 오제호
조국을 지키고 싶었던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지키고 싶었던 세 남자의 애틋한 한편 찬란했던 이야기가 있다.
지상파가 아님에도 18.1%라는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여주인공인 고애신이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장면이다. 이는 그간의 가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대일항쟁을 이어갈 주인공의 미래를 암시한다.
비록 고애신은 가상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준 고애신의 이상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은 결코 픽션만은 아니다. 어쩌면 반드시 배우고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의 일부일 수도 있다.
드라마 중반부에서 데이트를 하던 남주인공이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걷느냐고 묻자, 고애신은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라고 답했다.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여주인공 고애신은 의병이었다. 독립운동사에서 항일의병은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15년 채응언의 마지막 의병까지 약 20여년 동안 이어진다.
다만 이 시기는 여성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이후의 독립운동기에 비해 더 강했기 때문에 여성 의병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때문에 혹자는 고애신의 직업에 의문을 품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고애신은 실제로 존재했다.
현모양처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을미사변 당시 ‘남녀가 유별해도 나라 없이는 아무 소용없다’며 의병을 자처한 윤희순 여사는 고애신과 마찬가지로 사대부 출신이었다.
여성 30여 명으로 구성된 의병을 조직한 윤 여사는 의병훈련, 정보수집, 의병가 제작 등으로 의병의 운영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럼에도 경술국치로 국운이 기울자 만주로 이주한 윤 여사는 아들 유돈상 선생과 조선독립단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드라마 속 고애신과 유사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종합하자면 드라마 속 고애신은 당시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고 구국의 길을 걸었던 여성 의병이었다. 친일 반역자를 처단하는 의열투사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비록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고애신의 삶 후반부 또한 필자가 예상한 독립군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든 대일항쟁의 길을 걸었으리란 사실 만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너무도 훌륭하고 완벽한 독립운동가로 묘사된 고애신은 가상인물이지만, 조국광복을 향한 그녀의 작중 행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한 세기 전 이 땅에서 항일에 몸담았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계몽운동, (경제적)구국운동, 학생운동, 독립전쟁을 비롯하여, 거족적 투쟁이었던 3·1운동과 대일항쟁의 구심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까지 여성 선열의 족적은 남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
의병으로 시작된 대일항쟁이 광복으로 귀결되기까지 5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고애신이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다. 그리고 그 삶의 자취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되어 대한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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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제호 |
조국을 지키고 싶었던 한 여인과 그 여인을 지키고 싶었던 세 남자의 애틋한 한편 찬란했던 이야기가 있다.
지상파가 아님에도 18.1%라는 역대급 시청률을 기록하며 성황리에 종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바로 그것이다.
이 드라마의 엔딩은 여주인공인 고애신이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를 양성하는 장면이다. 이는 그간의 가혹한 시련에도 불구하고 대일항쟁을 이어갈 주인공의 미래를 암시한다.
비록 고애신은 가상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 보여준 고애신의 이상적인 여성 독립운동가로서의 모습은 결코 픽션만은 아니다. 어쩌면 반드시 배우고 기억해야 할 우리 역사의 일부일 수도 있다.
드라마 중반부에서 데이트를 하던 남주인공이 꽃으로만 살아도 될 텐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걷느냐고 묻자, 고애신은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라고 답했다.
이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여주인공 고애신은 의병이었다. 독립운동사에서 항일의병은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1915년 채응언의 마지막 의병까지 약 20여년 동안 이어진다.
다만 이 시기는 여성의 활동에 대한 사회적 제약이 이후의 독립운동기에 비해 더 강했기 때문에 여성 의병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때문에 혹자는 고애신의 직업에 의문을 품는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 속 고애신은 실제로 존재했다.
현모양처가 최고의 미덕으로 여겨지던 을미사변 당시 ‘남녀가 유별해도 나라 없이는 아무 소용없다’며 의병을 자처한 윤희순 여사는 고애신과 마찬가지로 사대부 출신이었다.
여성 30여 명으로 구성된 의병을 조직한 윤 여사는 의병훈련, 정보수집, 의병가 제작 등으로 의병의 운영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럼에도 경술국치로 국운이 기울자 만주로 이주한 윤 여사는 아들 유돈상 선생과 조선독립단을 조직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등 드라마 속 고애신과 유사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종합하자면 드라마 속 고애신은 당시 사회의 유리천장을 깨고 구국의 길을 걸었던 여성 의병이었다. 친일 반역자를 처단하는 의열투사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비록 드라마에서는 보여주지 않았지만 고애신의 삶 후반부 또한 필자가 예상한 독립군이든 아니면 다른 어떤 형태든 대일항쟁의 길을 걸었으리란 사실 만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이렇듯 너무도 훌륭하고 완벽한 독립운동가로 묘사된 고애신은 가상인물이지만, 조국광복을 향한 그녀의 작중 행적은 지금으로부터 약 한 세기 전 이 땅에서 항일에 몸담았던 여성 독립운동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계몽운동, (경제적)구국운동, 학생운동, 독립전쟁을 비롯하여, 거족적 투쟁이었던 3·1운동과 대일항쟁의 구심체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에까지 여성 선열의 족적은 남겨지지 않은 곳이 없다.
의병으로 시작된 대일항쟁이 광복으로 귀결되기까지 50여 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고애신이 짧지만 불꽃같은 삶을 살다 갔다. 그리고 그 삶의 자취는 자랑스러운 역사로 기록되어 대한국인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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