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는 지금 만화와 사랑에 빠졌다

‘타짜’ 최동훈 감독

시민일보

| 2006-10-01 20:00:04

“하라 히데노리 만화들이 좋다. 한동안 안도 유마가 쓴 ‘도쿄 80s’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니노미아 히카루의 만화들을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다. ‘백치 애인’이 좋고 ‘허니문 샐러드’도 좋고….”

‘타짜’ 최동훈 감독과의 만남은 만화 이야기로 시작해 만화 얘기로 끝났다. ‘좋은 만화’ 몇 편을 권했더니 바로 핸드폰을 꺼내 메모한다. “꼭 찾아 읽겠다”고 한다.

‘타짜’는 만화가 허영만씨의 원작 중 제1부 ‘지리산 작두’를 영화로 옮긴 것이다. 최 감독은 “원작만화가 걸작이다. 취재가 잘 돼 있어 연출하는데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워낙 대단한 원작이라 처음 영화화 작업을 시작할 때 주위에서 걱정도 많이 했다고 한다. “잘해야 본전”이라는 우려였다.

완성된 영화에서는 최 감독의 성향이 듬뿍 묻어나온다. 속도감 있는 연출은 ‘범죄의 재구성’에서 이미 증명된 탁월한 장기다. 주요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얽혀 들어간다. 주인공 고니(조승우)의 성장 드라마로도 해석된다. 최 감독은 “연극적인 면이 있고 무협지나 서부극 개념으로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 감독은 원래 소설 마니아다. 뒤늦게 만화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언젠가 만화가게에서 우연히 찾아 읽은 만화가 정말 훌륭했다. 꼭 영화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생겨서 알아봤더니 다른 감독이 이미 영화화를 진행하고 있더라.”

최 감독이 지금까지도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는 이 작품이 바로 ‘올드보이’다. 박찬욱 감독은 일본만화 ‘올드보이’를 영화화, 칸영화제 감독상을 받는 등 최고의 성과를 이뤄냈다. 이는 만화의 영화화 작업이 한국에서 본격화 하는데 촉매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 비해 한국은 아직 영화화 할 수 있는 만화 시장이 미약하다. 드라마 ‘궁’과 최근 허영만씨의 작품이 연속해서 영화화 작업 중이긴 하다. 하지만 널리 알려진 몇몇 작품들로 집중될 뿐이다. ‘올드보이’ 때처럼 원작만화가 재조명될 정도의 ‘발견’ 사례는 없다. 컨텐츠가 아직 다양화하지 못했다.

최 감독은 “만화와 영화시장이 상호 협력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교류가 계속돼야 한다”는 판단이다. 영화화가 고려됐던 일부 작품들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명하다. 강경옥씨의 ‘두사람이다’, 일본만화 ‘20세기 소년’와 ‘최종병기 그녀’ 등이다. 최 감독은 ‘괴물’의 봉준호 감독처럼 우라사와 나오키의 팬이다. “‘20세기 소년’이 좋지만 일본에서 판권을 얻어오는 게 힘들다”며 아쉬워 한다. “일본에 가서 직접 연출하지 않는 한…”이라며 한숨 짓는다.

대신 최 감독은 허영만씨의 ‘각시탈’에 관심을 보였다. “이미 영화화가 되고 있는데 가서 시켜달라고 하고 싶다”며 원작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캐릭터가 좋아 한국형 시리즈물로 이어나갈 수도 있겠다”며 매료된 상태다.

최 감독은 향후 ‘슬픈 스릴러’를 연출할 계획도 공개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을 존경, 드라마의 중요성을 익히 알고 있는 그다. ‘타짜’ 제작사는 영화를 시리즈로 만들 계획이다. 물론 최 감독이 계속 연출해주기를 희망한다. 하지만 최 감독은 지쳤다. “영화는 발로, 다리로 찍는다. 굉장히 힘든 노동”이라면서도 영화 개봉에 맞춰 배우들과 함께 무대인사를 다니는 데 소홀하지 않는다.

‘타짜’는 27일 개봉했다. 한동안 흥행 행진을 이어갈 듯하다. 덩달아 최 감독의 다음 행보도 빨라지게 됐다.

‘타짜’ 속편이든, ‘각시탈’이든, 아니면 핸드폰 메모장 가득 저장해간 다른 만화가 됐든, 현시점 만화에 묻혀 있는 최 감독의 차기작 역시 만화가 원작일 개연성은 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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