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랫말 오염 심각… 옛가요는 ‘詩’였다
1990년대부터 댄스곡등서 욕설·은어·얼치기영어 출현
시민일보
| 2006-10-09 20:13:13
가요의 노랫말 오염 정도가 심각하다. 욕과 비속어, 은어에 얼치기 영어까지 보태졌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음란한 가사를 예사로 내뱉는 가수가 흔키만 하다.
조악한 노랫말이 교묘하게 포장돼 듣는 이의 가슴을 파고든다. 일단 아름다운 멜
로디와 리듬에 흠뻑 빠진 다음 정신을 추스른 뒤에야 비로소 노랫말에 귀를 여는 단계로 접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사의 선악 가치 판단은 이미 흐려진 상태다.
‘노랫말 공해’가 엄습한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서태지와아이들을 비롯해 HOT, DJ DOC 등 댄스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부터다. 시적인 비유나 은유 대신 연출된 분노와 설정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넣은 상업적으로 계산된 가사들이 난무하기에 이르렀다.
사적인 일기를 쓰거나 격의 없는 친구에게 투정하는 듯한 반말투 가사가 속속 출현했다.
서태지와아이들은 ‘교실이데아’, ‘컴백홈’ 등을 통해 사회 모순을 꼬집거나 비판, 청소년들의 정서에 직접 호소하며 사회적인 관심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기성세대는 이들의 직설적인 노랫말에 딴죽을 걸 엄두도 못냈다. 그들을 엄호하는 청소년 팬들의 기세가 워낙 등등했던 탓이다.
이어 90년대 말, 내용도 파격적인 이정현의 ‘바꿔’가 당시 선거바람을 타고 역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모두 제 정신이 아니야/ 다들 미쳐가고만 있어/ 어느 누굴 믿어/ 어찌 믿어 더는 못믿어/ 누가 누굴 욕하는 거야/ 그러는 넌 얼마나 깨끗해/ 너 나 할 것 없이 세상 속에 속물들이야/ 바꿔 바꿔 바꿔 모든 걸 다 바꿔 /바꿔 바꿔 사랑도 다 바꿔.’
댄스곡이 득세하면서 가사에 불어 닥친 큰 변화 중 하나가 영어다. 영어는 노랫말 뿐 아니라 노래 제목에도 영향을 미쳤다. 곡명과 가사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다. 힙합음악이 고개를 들면서 랩 또한 영어가 주를 이루게 됐다. 어느덧 영어가 없으면 노래가 안될 지경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이미 훼손될 만큼 훼손됐다. 2000년 초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가사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DJ DOC의 노래가 대표적인 예다. ‘X같은 짭새/ X까라가라 나나라/ 깐죽대던 X만한 XX.’(포조리)
은지원의 ‘아하(A-HA)’란 곡도 문제가 됐다. ‘지혜로워라 대가리 좀 굴려라 요 요 요~/ 내 말은 집합 모두가 다 X밥 배운거라 X도 없네/ 돈벌어 먹다가 뒤질 인생/ 예 예 예 예.’
작사가가 가수의 무대 퍼포먼스를 고려해 노랫말을 짓는 등 노랫말 파괴는 다양한 루트를 통해 이뤄진다.
사랑하는 사람의 언니를 좋아한다거나, 노골적으로 성을 암시하는 등 가사의 소재에서도 금기가 사라지다시피 했다.
‘너무나 보고싶은 넌데/ 전하고 싶은 말이 많은 난데/ 오늘 니 하루가 궁금한 난데/ 그래서 니 언니에게 너의 소식을 물어봤지/ 너 말고 니 언니/ 그녀만 곁에 있으면 나는 행복해/ 너 말고 니 언니/ 오 날 사랑해.’ (이지라이프-‘너 말고 니 언니’)
존댓말이나 ‘~하오’체는 흘러간 노래에서나 들을 수 있을 따름이다. 옛 스타가수들은 반말을 하더라도 자신에게 했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이나 후회를 표현하는 수단이 가사 중 반말이었다.
그러나 축약어 권하는 인터넷 사회는 모든 것을 짧고 자극적으로 내몰았다. 이같은 기류를 가장 먼저, 정확히 포착한 곳이 바로 가요계다. 음반의 주 구매계층인 10대의 설익은 정서에 맞장구 치며 이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노랫말은 시대상을 반영하는 거울일 수 있다. 시(詩)까지는 기대난망이다. 그렇다고 욕설과 성희롱에 시달릴 이유가 가요 소비자에게는 없다.
9일은 560돌 한글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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