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의 상업감독 전성시대

박찬욱-김지운-봉준호 한국영화계 점령

시민일보

| 2007-02-13 19:46:09

박찬욱 공동경비구역으로 흥행기반 얻은후 복수 3부작 제작

김지운 달콤한 인생으로 장르영화 본질 선봬… 신작도 순탄

봉준호 작년 최고의 흥행작 ‘괴물’등 다양한장르 시도 호평


영화감독 박찬욱(44) 김지운(43) 봉준호(36) ‘트로이카’가 한국영화 도약의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대 배창호와 이장호, 90년대 강우석과 강제규로 이어지는 상업영화 감독의 계보를 잇고 있다. 이들이 과거보다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은 단순한 상업영화 감독에 머무르지 않고 미학적 성취까지 얻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팬은 스타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지 않는다. 톱스타 캐스팅 영화들이 줄줄이 실패하는 현실에서 이들 세 감독의 영화는 대중의 전폭적 신뢰를 얻고 있다. 이런 ‘브랜드 파워’는 스타를 불러 모은다.

김지운 감독의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는 송강호, 이병헌, 정우성이 캐스팅됐다. 박찬욱 감독의 이영애, 비(정지훈) 캐스팅도 마찬가지다. 봉준호 감독의 캐스팅 제의를 거부할 영화배우는 없을 것이다.
‘작가주의 상업영화 감독’은 세계적 흐름이다. 미국도 80년대 컬트영화 감독, 90년대 인디영화 감독들 중 상당수를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가 흡수했다.

샘 레이미, 코엔 형제, 브라이언 싱어 등이 이제 할리우드에서 톱스타들과 함께 대형 상업영화를 만든다. 천편일률화 돼가는 할리우드 상업영화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려면 작가주의적 색채가 가미된 상업영화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바탕에 깔려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경쟁이 치열한 상업영화 시장에서 한국영화가 살아남으려면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독특한 상업영화가 필요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자기 색채를 명확히 지닌 상업영화 감독이 득세할 수 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세 감독의 공통점은 고전 장르 영화들의 열혈한 신봉자라는 사실이다. 당연히 최근 논란이 된 시네마테크 살리기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지난달 ‘시네마테크의 친구들 영화제’에서는 직접 상영영화를 추천하기도 했다. 박감독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여행자’(1975), 김감독은 테렌스 멜릭의 ‘천국의 나날들’(1978), 봉감독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1979)을 각각 선택했다.

감독의 영화취향을 보면 필모그래피가 설명된다. 박감독은 샘 패킨파, 돈 시겔 등 80년대 할리우드 B급 영화 애호가다. 장르를 작가적으로 해석한다.


박감독은 데뷔작 ‘달은 해가 꾸는 꿈’(1992)부터 ‘삼인조’(1997)의 실패로 의기소침, 비디오가게 주인 겸 얼굴 없는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동경비구역 JSA’(2000)로 상업적 기반을 얻은 이후 노골적으로 자기 취향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일명 ‘복수 3부작’이다. ‘올드보이’(2003)가 비디오가게 점원 출신 칸영화제 심사위원장 쿠엔틴 타란티노의 눈에 든 것은 당연한 결과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2006)도 감독의 상상력이 발휘된 개성 있는 영화였지만, 아이돌 스타 캐스팅으로 인해 감독의 의도가 상업적으로 변질된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 하는 이들이 많다.

김감독은 초기에는 ‘포스트 장르’형 작가였다. ‘조용한 가족’(1998)은 일반 호러 장르의 후기화였고, ‘반칙왕’(2000)도 스포츠 영화를 뒤틀었다. 호러와 스포츠 영화가 국내에 자리잡기도 전에 먼저 후기화 버전을 보여줬다는 점이 의미있다. 시대를 앞서간 셈이다.

하지만 ‘장화홍련’(2003), ‘달콤한 인생’(2005)부터는 장르의 본질로 들어가고 있다. 제목에서부터 강하게 웨스턴 장르를 암시하고 있는 신작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주목받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봉감독은 복합적이다. 재기발랄한 데뷔작 ‘플란다스의 개’(2000)에서 장르를 버무리는 재능이 발견됐다.

‘괴물’(2006)은 그 집대성이다. 괴수영화, 스릴러, 가족드라마, 정치풍자극이 섞여있다. 봉감독은 할리우드의 스티븐 스필버그, 론 하워드 같은 안정적 퀼리티를 내는 상업영화 작가다. 그러나 이 안에 사회성을 넣는다는 것이 특별하다. 다양한 장르에 손을 대며 계속 성장 중이다.

대중문화 평론가 이문원씨는 “장르에 대한 관심이 충만하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한국영화는 상당기간 동안 장르가 없는 영화였다. 진지한 영화는 모두 드라마였고, 장르 영화는 대부분 저급한 것으로 치부됐다”면서 “사회문제, 철학적 소견, 심리분석, 정치풍자 등 여러 요소들을 장르를 통해 투영한다는 것은 대중 상업영화 속에 개인적 비전을 담으려는 최적의 시도다.

이런 시도를 실험하는 감독들이 비슷한 시기에 함께 등장했다는 것만으로 이들을 새로운 작가군으로 분류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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