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다음' 버튼만 누르고 있다

    기고 / 시민일보 / 2026-05-13 09:2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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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 시상수 지부장.
    법정 교육기관에 몸담고 있는 필자조차 타 분야의 의무 교육을 수강할 때면, 본능(?)적으로 배속 기능과 스크롤 이동이 가능한지 확인한 후 무의미하게 ‘다음’ 버튼만 반복해 누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결국 화면 속 교육내용은 잠시 눈앞을 스쳐 지나갈 뿐, 몸과 머리에 남지 않는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다 무엇을 완료했는가에 매몰되는 순간, 교육은 어느새 ‘변화’보다 ‘형식’에 가까워진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중요치 않고, 무엇을 클릭했는지만 기록으로 남는 현실은 자못 씁쓸하다. 이처럼 소방안전마저 형식의 언어로 환원되는 순간은 '화재의 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제35조의 ‘피난유도 안내정보 제공 제도’에서도 드러난다.

    본래 정의(正義)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대우하는 데서 시작된다. 그러나 현행 피난유도 안내 규정은 교육, 방송, 안내도 게시, 영상 제공이라는 네 가지 수단을 병렬적으로 나열하며, 이 중 하나만 선택해 이행하면 법적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한다. 문제는 이들 수단이 결코 동일한 효과를 지니지 않는다는 점이다. 목적이 같은 제도라 하더라도 실제 행동 변화를 유발하는 정도가 현저히 다르다면, 그것들을 더 이상 동등한 수단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럼에도 행정 편의주의는 본질과 효과가 엄연히 다른 수단들을 마치 가치가 같은 ‘등가물(等價物)’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다른 것도 같게’ 취급하는 기묘한 평등주의 아래서, 안전은 결국 가장 손쉬운 방식인 ‘피난안내도 게시’로 수렴되고 만다.​

    물론 안내도 자체의 효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안내도는 피난 체계의 기초적인 출발점이며, 그 자체로 존재 이유가 충분한 수단이다. 다만 문제는 ‘정적인 박제’에 가까운 정보 제공 방식이, 살아 움직여야 할 안전의 전부로 치환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육은 반복을 통해 신체적 기억을 구축하고, 방송은 정적을 깨우며 찰나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영상 또한 상황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며 위험을 간접 경험하게 만든다. 반면 안내도는 대개 수동적인 정보의 나열에 머문다. 전달의 층위와 기억의 심도, 그리고 행동을 촉발하는 추동력 측면에서 본질적 차이가 존재함에도, 법령은 이를 동일한 가치로 묶어두고 있다.​

    화재 안전의 최종 목적은 설비의 ‘존재’가 아니라 재실자의 ‘생존’에 있다. 자동화재탐지설비, 스프링클러설비, 제연설비와 같은 수많은 시스템 역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피난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화재 안전은 본질적으로 수많은 실패 가능성을 전제로 설계되는 ‘페일 세이프(Fail-safe)’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감지가 지연될 수도 있고, 설비가 불완전하게 작동할 수도 있으며, 초기 진압에 실패할 수도 있다. 그 모든 실패의 끝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야 할 안전의 보루는 결국 ‘피난 가능성’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성적 설계도에 따라 피난하지 않는다. 오직 익숙한 실천의 궤적을 따라 움직일 뿐이다. 실제 화재라는 극한 상황에서 인간은 공포와 연기, 군중 심리에 압도된다. 그 혼돈 속에서 차분히 평면도를 독해하며 최적의 피난 동선을 계산해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생존을 결정짓는 것은 순간의 논리적 판단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몸에 각인된 감각과 무의식적 행동이다. 피난은 추상적인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구체적인 ‘실존적 행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현재 제도는 “실제 피난 역량이 형성되었는가”라는 본질적 질문보다, “정보를 제공했는가”라는 형식적 요건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선택지가 병렬적으로 놓이는 순간, 안전의 가치는 생존이 아닌 비용 효율의 논리로 기운다. 결국 가장 저렴하고 간편한 수단이 제도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는 법이다.​

    시각장애인에게는 닿지 않는 그림이고 외국인에게는 해독되지 않는 기호일 뿐인 안내도 한 장이 ‘법적 면죄부’처럼 기능하는 현실은 안전의 본질을 되묻게 만든다. 방송은 즉각적인 상황 인지를 돕고, 반복 교육은 행동 기억을 형성하며, 시청각 중심의 안내는 피난 약자의 접근성을 보완한다. 이들 수단은 서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한계를 메우는 보완재가 되어야 한다.​

    피난유도 안내 체계는 ‘행위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보존’을 중심으로 재설계되어야 한다. 안내도 게시를 기본으로 하되, 숙박시설·노유자시설·의료시설처럼 자력피난이 어렵거나 피난 지연 가능성이 큰 이들이 상시 머무는 야간·상시 피난취약시설일수록, 단일 수단에 의존하지 않는 다층적 피난안전망 구축이 절실하다. 최소한 이러한 시설에서만큼은 안내도 게시만으로 의무를 다했다고 인정하는 현행 구조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안내도는 의무 이행의 흔적은 남길 수 있다. 그러나 흔적이 행동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행정은 안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만, 재난은 재실자가 실제로 움직일 수 있었는가를 묻는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피난할 수 있는가’보다 ‘안내했는가’라는 행정적 흔적에 더 안도해 온 것은 아닌지 모른다. 그러는 사이 제도는 흔적을 남겼지만, 정작 재실자는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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