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2년 단 1건이었던 캄보디아 내 한국인 납치·감금 사건이 2023년 8월 기준 330건으로 폭증했다. 잡코리아에 올린 이력서 한 장이 지옥행 티켓이 되는 시대다. '월 1천만 원 고수익 사무직'이라는 달콤한 제안에 출국한 청년들은 현지 도착과 동시에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기고, '웬치(Wench)'라 불리는 범죄 단지에 감금된다. 거부하면 폭행과 고문이 기다리고, 순응하면 스캠(사기) 피싱과 온라인 도박 범죄의 공범이 된다. 피해자는 동시에 가해자가 되고, 그 두려움 때문에 구조조차 요청하지 못한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의 총정원은 15명, 그중 사건 담당은 단 3명이다. 대사직은 4개월째 공석이다. 현지 경찰은 피해자가 현재 위치, 연락처, 건물 정보, 여권 사본, 얼굴 사진, 본인 구조 요청 영상까지 제출해야만 출동을 검토한다. 감금당한 피해자에게 이 모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현실적인가?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우리 국민은 인접 국가에서조차 이렇게 무방비로 당해야 하는가?
캄보디아가 범죄의 온상이 된 데는 명확한 이유가 있다. 세계 마약 공급지인 골든 트라이앵글(미얀마, 태국, 라오스 접경) 지역이 2023년 말 여행금지 구역으로 지정되며 단속이 강화되자, 중국계 범죄 조직들은 감시가 느슨한 캄보디아로 거처를 옮겼다. 범죄학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풍선 효과(Crime Displacement)'다. 한 지역의 단속 강화가 범죄를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뿐이라는 이론이 현실이 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캄보디아 당국과 범죄 조직의 결탁이다. 중국의 인프라 투자와 정치적 후원을 받는 훈센 일가 정권은 중국계 조직의 범죄를 묵인하고 있으며, 경찰과 범죄 조직 간의 유착은 일상화되어 있다. 그 결과 캄보디아의 스캠 산업 규모는 공식 GDP의 25%를 훌쩍 넘어섰다. 이는 더 이상 단순 범죄가 아니라 국가 경제 구조 자체가 범죄에 기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국인인가? 범죄 조직은 철저히 계산한다. 한국인은 인터넷 금융을 활발히 이용하면서도 상대적으로 많은 현금을 소지하는 경향이 있다. 대포통장 개설이 비교적 용이해 범죄 도구로 활용하기 좋다. 무엇보다 청년 실업과 경제적 절박함이라는 사회심리적 취약성이 존재한다. '월 1천만 원'이라는 미끼는 허황된 것이 아니라 정교하게 계산된 유인책이다.
여기에 더 교묘한 함정이 있다. 피해자가 강압으로 범죄에 가담하면 법적으로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가 된다. 이 애매한 경계는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이것이 바로 이 범죄가 단순 외교 문제가 아니라 '범죄 예방과 위험성 평가', '조기 개입 시스템'이 필요한 사안인 이유다.
그렇다면 선진국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미국의 민간조사 시스템은 1850년 스코틀랜드 출신 앨런 핑커튼이 시카고에서 설립한 핑커튼 탐정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링컨 대통령 암살 음모를 사전에 적발하며 명성을 얻은 이 회사는 현재까지도 세계 최대 보안 기업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에는 현재 약 5만 명 이상의 면허를 받은 민간조사관(Private Investigator, PI)이 활동하며, 이들은 실종자 추적 전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해외 실종 사건에서 PI의 역할이다.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마약 카르텔에 납치된 미국인을 72시간 만에 찾아낸 사례, 동남아시아에서 인신매매 조직에 끌려간 피해자를 구출한 사례 등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었다. 가족들은 외교 채널의 느린 대응에 답답함을 느낄 때 PI를 고용한다. PI들은 첨단 추적 시스템, 소셜미디어 분석 도구, 데이터베이스 검색 등 첨단 기술과 함께 현지 정보원 네트워크를 동시에 활용한다. 정부가 할 수 없는 비공식 접촉과 협상을 진행하며, 때로는 현지 경찰보다 빠르게 움직인다.
미국 PI 산업의 핵심은 '전문성과 책임성의 제도화'다. 각 주마다 엄격한 면허 제도를 운용하며, 범죄경력 조회, 전문 교육 이수, 자격시험 합격, 배상책임 보험 가입 등을 의무화한다.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6,000시간 이상의 실무 경험 또는 형사사법학 학위와 3년의 경험을 요구한다. 불법 행위 시 즉각 면허가 취소되고 형사 처벌을 받는다. 이러한 시스템이 175년간 작동하며 국민 안전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것이다.
영국은 민관협력(Public-Private Partnership, PPP) 모델을 국가 운영의 핵심 전략으로 삼고 있다. 1992년 메이저 정부가 도입한 민간투자사업(Private Finance Initiative)을 시작으로, 1997년 블레어 정부는 이를 PPP로 확대 발전시켰다. 현재 영국의 PPP는 교통, 의료, 교육을 넘어 국가 안보와 국민 보호 영역까지 확대되었다. 영국 내무부는 G4S, Serco 같은 대형 민간 보안 회사 및 조사 기관과 협력하여 테러 예방, 조직범죄 대응, 해외 영국인 보호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해외 위험 지역에서 영국인이 납치되거나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 정부는 Control Risks, NYA International 같은 민간 위기관리 전문 기업과 즉각 협력한다. 이들 기업은 전직 특수부대원, 외교관, 정보기관 요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지 보안 상황 분석, 인질 협상 전문가 파견, 구출 작전 기획 등을 담당한다.
영국의 PPP 모델이 성공적인 이유는 명확한 역할 분담과 상호 책임성이다. 정부는 사법권과 외교력을, 민간은 기동성과 전문성을 제공한다. 계약서에 성과 지표(KPI)를 명시하고, 정기적인 평가를 통해 책임을 묻는다. 이 협력이 제도화되어 있기에 위기 상황에서 신속한 대응이 가능한 것이다.
일본은 2007년 「탐정업의 업무의 적정화에 관한 법률(探偵業法)」을 제정하여 탐정 활동을 전면 합법화했다. 이 법은 오랜 준비 과정을 거쳤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불법 탐정으로 인한 프라이버시 침해와 스토킹 범죄가 사회 문제화되자, 일본 정부는 탐정업을 방치할 것이 아니라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관리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2007년 제정된 법률은 탐정업의 범위를 명확히 규정하고, 도도부현 공안위원회에 등록제를 통해 관리하며, 개인정보보호와 인권 침해 방지 조항을 명시했다.
현재 일본에는 약 6,000개 이상의 등록된 탐정 사무소가 있으며, 연간 시장 규모는 약 2,000억 엔(약 2조 원)에 달한다. 일본 탐정들은 실종자 수색, 불륜 조사, 기업 신용조사, 보험사기 조사 등 다양한 업무를 수행한다. 주목할 점은 일본 정부가 해외 일본인 보호에 탐정업을 간접적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은 24시간 해외 일본인 지원 체계를 운영하는데, 민간 탐정들이 가족의 의뢰를 받아 현지 조사를 수행하면 그 정보가 영사 업무와 연계된다. 특히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일본인이 사기나 범죄에 연루될 경우, 가족들은 합법적으로 탐정을 고용해 신속한 대응을 한다.
탐정이 수집한 현지 정보, 범죄 조직 동향, 피해자 위치 등이 일본 영사관에 전달되면, 이를 바탕으로 현지 당국과 협상하거나 구조 작전을 펼친다. 일본의 성공 요인은 '제도화를 통한 투명성 확보'다. 법적 테두리 안에서 탐정이 활동하기 때문에 불법 행위가 차단되고, 피해자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민간조사 역량을 적극 인정하고 협력한다는 점이 한국과의 결정적 차이다.
공인탐정제도는 15대 국회(1999년)부터 논의되어 온 25년 숙원 법안이다. 21대 국회까지 13차례나 발의되었으나 번번이 좌절되었다. 그 사이 불법 사설탐정으로 인한 피해는 계속되었고, 제도 밖에 방치된 영역은 더욱 커졌다. 지난 8월 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25년 숙원 공인탐정업법 제정에 따른 국회 공청회'는 새로운 전환점이었다. 신성범 국회의원(국회정보위원장) 주최로 열린 이 자리에서 필자는 "한국탐정제도 5년, 이제는 법제화로"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2025년 새 법률안의 핵심 개선점을 제시했다.
새 법률안은 과거의 한계를 명확히 보완했다. 행정안전부 중심으로 주무부처를 일원화하고, 국가자격시험과 경력자 면제를 합리적으로 조화시켰다. 변호사 등 유사 직역과의 협력 방안을 마련하고, 개인정보보호를 대폭 강화했다. 무엇보다 연간 7만 명이 넘는 실종자 문제와 고령화 사회의 다양한 현실적 수요를 반영한 실효성 있는 설계다.
캄보디아에서 돌아오지 못한 330명의 한국인. 그들은 단순한 통계가 아니다. 누군가의 자녀이고, 형제이며, 연인이다. 그들이 '월 1천만 원'이라는 미끼에 넘어간 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청년 실업과 경제적 절박함이라는 구조적 문제의 결과다. 그들을 구하지 못한 것은 외교 역량의 한계이자, 민간 안전망 부재의 결과다.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다. 미국은 175년간 PI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고, 영국은 민관협력으로 위기를 관리하며, 일본은 2007년 법제화로 투명성을 확보했다. 우리만 25년간 논의만 반복하며 제도화를 미뤄왔다. 그 사이 불법 사설탐정은 난립했고, 제도 밖 방치로 인한 2차 피해는 계속되었다. 공권력의 사각지대도 심각하다. 이제는 결단해야 한다.
22대 국회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 앞에 서 있다. 공인탐정제도는 단순히 새로운 직업군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연간 7만 명의 실종자를 찾고, 고령화 사회의 안전망을 촘촘히 하며, 해외에서 위험에 처한 국민을 구하는 '국가 안전 시스템'을 완성하는 일이다. 사전 예방, 조기 개입, 민관협력이라는 3대 축을 통해 범죄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를 세우는 일이다.
캄보디아 사태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들은 국민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공인탐정업법을 시급히 제정하는 것. 25년간의 논의를 결실로 맺는 것. 더 이상 330명이 아니라 331번째 피해자가 나오기 전에, 지금 당장 행동하는 것이다. 제도의 공백이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22대 국회여, 이제는 결단할 때다.
<최순호>
▲서울디지털대학교 탐정학과 주임교수 ▲경찰학박사, 美경영학박사 ▲前총경, 前대통령실 행정관 ▲K-탐정단장, K-탐정연구소장 ▲공인탐정법 등 민간조사업 관련 논문·저서 다수
※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시민일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