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상수 한국소방안전원 부산지부장
▲ 시상수 지부장 |
로또 1등 당첨 확률이 814만 분의 1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줄을 서는 사람들. 신기하면서도, 어쩐지 낯설지 않다. 나 역시 복권을 사지는 않지만, 가끔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곤 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동기-행동 간의 괴리’라 한다. 마음은 있지만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상태다. 이 괴리는 우리 사회의 소방훈련 현실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누구나 위급한 순간 본능적으로 움직여 자신과 타인의 생명을 지켜내길 바란다. 그러나 정작 그 본능을 단련하는 일에는 늘 인색하다. 마음의 바람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그 간극은 소방훈련의 현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불은 복권처럼 운이 아니라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는 위험이다. 머리로는 이를 알지만, ‘언제 불이 날지 모른다’는 막연함이 우리를 망설이게 만든다. 즉, 위험의 불확실성이 훈련의 절박함을 무디게 만드는 역설이다. 그 결과 사람들은 “설마”를 앞세우고, 건축물의 관계인은 “기록”만 남기기에 급급하다. 여기에 법이 요구하는 최소 기준만 지키면 된다는 안일한 안전의식이 더해지면서, 훈련은 점점 의미보다 형식으로 전락한다.
그렇게 훈련은 기록으로만 남고, 실제 대응력은 자라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은 결국 불완전한 제도가 낳은 산물이다.
현행 「화재예방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제37조는 관계인에게 근무자와 거주자 등에 대한 소방교육 및 훈련을 실시할 의무를 부과하고, 이를 위반하면 3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겉보기엔 체계적인 제도 같지만, 실제 현장은 다르다.
법은 연 1회 이상 실시만 규정할 뿐, 소방훈련에 모든 근무자와 거주자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명확한 기준은 없다. 그러다 보니 몇몇이 소화기를 들고 사진을 찍은 뒤, 그 사진을 보고서에 붙이면 ‘훈련 완료’가 된다. 이처럼 문서에는 기록이 남지만, 현장에는 움직임이 없다.
이제는 제도적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 모든 근무자와 거주자의 참여를 원칙으로 하되, 무엇을, 어떻게, 얼마나 자주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월 1회 이상 훈련을 기본으로 하고, 근무자 수나 위험도에 따라 횟수를 조정하는 방식이 현실적일 것이다. 반복적인 소방훈련을 통해 위급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일 수 있는 대응 능력을 길러야 한다. 아울러 소방훈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정당한 사유 없이 훈련에 참여하지 않은 근무자나 거주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소방교육 및 훈련의 컨설팅 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소방공무원 경력자, 소방안전교육사, 소방안전 전문교육기관 강사 등 실무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훈련의 질을 진단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전문적 평가체계가 마련되어야만, 형식적인 훈련에서 벗어나 진정한 역량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법은 특급 및 1급 소방안전관리대상물의 경우 교육 및 훈련을 마친 날부터 30일 이내에 결과를 소방관서에 제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대부분 보고서 취합에 그친다. 소방관서는 절차는 지켰지만, 정작 훈련의 실효성은 확인하지 못하는 구조다.
따라서 소방관서가 단순히 훈련 결과를 취합하는 데 그치지 말고, 소방안전관리 전문기관에 위탁해 교육과 훈련의 적정성을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체계적 순환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행정 효율화를 넘어 자율안전관리 문화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복권은 꿈을 사지만, 훈련은 생명을 산다. 복권은 운이지만, 훈련은 습관이다. 소방훈련은 ‘혹시 몰라서 하는 일’이 아니라, ‘반드시 살아남기 위한 연습’이다. 그 진정한 1등 당첨자는 화재가 나도 끝까지 침착하게 행동할 수 있는 당신이다.
안전은 더 이상 ‘당첨’처럼 운에 맡길 일이 아니다. 위험에 맞서 생명을 지키는 힘을 길러야 한다. 안전은 복권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깊이 스며들어 매일의 몸짓으로 발현되는 생존의 약속이다.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1등 번호’는 3·12·18·27·36·41 — 신속한 피난, 소화기 숙지, 피난로 확보, 연기나 불 발견 시 신고, 협력 행동, 그리고 위험요인 사전 점검이다. 여기에 보너스 번호 ‘42’, 바로 침착함 유지. 혼란과 위험의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그것이 위험 속에서 안전한 행동을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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