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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전쟁 발(發) 고유가(高油價)에 따른 물가 충격이 장기화할 조짐이 커가고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공급망 위기가 본격적으로 물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전년 같은 기간 대비 2.2%를 기록한 지난달까지는 몇몇 석유류 품목을 빼면 비교적 안정권이었지만, 중동 전쟁의 충격파가 본격화한다는 전망이 속출하고 있다. 이미 고유가는 세계 경제 전반을 뒤흔드는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물가 역시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지난 3월 2.2% 상승하며 다시 요동치고 있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4월 2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 물가 지수는 118.80(2020년=100)으로 1년 전보다 2.2%나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11월 2.4%에서 12월 2.3%, 지난 1월 2.0%로 내려온 뒤 2월까지 같은 수준을 유지하다가 지난달 0.2%포인트 높아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물가 상승 전망치를 2.7%로 끌어올려 작년(2.1%)보다 껑충 뛸 것으로 봤다. 지난달 말 기준 주요 투자은행(IB) 8곳의 평균 전망치도 2.4%로 높아졌다. 올해 2월의 2.0%에서 0.4%포인트 대폭 상향 조정했다. 정부 목표치인 2.1%를 웃도는 수치다. 2분기 또는 3분기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0%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걱정이 태산이다. 특히 ‘JP모건(JPMorgan)’은 중동 상황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면 5∼9월에는 3%를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 전쟁으로 급등한 유가가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오일플레이션(Oilflation │ 기름값 상승에 따른 물가 전반 오름세)’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무엇보다 석유류가 9.9% 뛰며 전체 물가를 끌어올렸다. 전쟁 장기화는 중동에서 주로 원유를 들여오는 한국경제에 대형악재다.
국책 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이 지난 3월 19일 발표한‘미국-이란 충돌과 호르무즈 리스크 공급망 시나리오 분석 및 시사점’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Strait of Hormuz)’ 봉쇄가 3주간 지속되는 ‘단기 공급 충격’ 상황에서 제조업 생산비는 5.4% 오르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5~125달러로 뛰며,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60~90% 상승할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3개월 이상 길어지는 ‘구조적 공급 충격’ 시나리오에서 제조업 생산비는 최대 11.8% 오르고 국제 유가는 배럴당 150~180달러로 상승하며, LNG 가격은 평시 대비 1.5~2배 오른다고 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경기 하방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음을 울렸다.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여파는 가장 먼저 에너지 가격 폭등을 이끌었지만, 앞으로 운송·물류, 공산품·가공식품·농축수산물, 외식 서비스까지 도미노식 파장이 우려된다. 올해 3월 현재 한국은 수입 원유의 약 70%, LNG의 20% 안팎을 중동에서 조달한다. 대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원유 수입액은 753억 달러, 이 중 중동 비중은 68.8%다. 10년 전인 2016년 85.2%에 비하면 낮아진 수치지만, 2021년 59.5%까지 떨어졌던 의존도가 다시 70% 선으로 반등했다는 사실이 더 큰 문제다. 50년 전인 1973년의 ‘1차 오일쇼크’ 당시에도, 30년 전인 1991년의 ‘걸프전(Gulf戰)’당시에도, 정부는 ‘원유 도입선(導入線) 다변화’를 외쳐댔지만, 위기가 지나갈 때마다 중동 의존도는 다시 상승 곡선을 그렸다. 지금 우리는 반세기 동안 단 한 번도 해결하지 못한 구조적 함정 앞에 다시 서 있다.
당장 이달부터 시작된 유류할증료 인상에 따른 국제항공료 급등은 숙박·외식 등에 전가돼 서비스 물가 전반의 상승을 이끌 수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다음 달부터 국내선 유류할증료를 7,700원에서 3만 4,100원으로 4배 넘게 인상한다. 이에 따라, 양대 항공사의 제주와 김포 노선 주말 운임은 15만 원을 웃돌 것으로 보이는 데, 저비용 항공사들도 조만간 유류할증료를 인상할 예정이다. 운송비가 오르면 소매 상품의 가격도 밀어 올리고, 생산 위축으로 이어진다. 건설업계에선 고유가 여파에 레미콘에 필수인 석유 부산물의 가격 인상이 겹치면서 ‘4월 대란설’이 나돌고 있다.
비료의 공급 차질은 전 세계적인 식량 위기 우려를 키운다. 국제 비료 해상운송의 3분의 1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카타르와 이란은 전쟁 후 비료 생산을 크게 줄였다. 중국은 비료 수출 통제에 나섰다. 비료의 핵심 원료인 천연가스 가격까지 폭등해 글로벌 곡물 생산 감소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당장 2분기 ‘국제 곡물 선물가격지수’가 1분기 대비 5.9~6.4%, 지난해 동기 대비 7.2% 상승한 120을 보일 전망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4월 3일 발표한 국제 곡물 관측에 따르면 2분기 ‘국제 곡물 선물가격지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 장기화로 인한 비료 공급 차질로 주요 곡물 재배면적 감소 우려와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바이오 연료 수요 확대로 전 분기 대비 상승할 것으로 나타났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오는 7월 말까지 국내 비료 공급에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가격 인상 전망에 사재기가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전언이다. 파종 시기를 맞아 농업용 비닐의 수급 우려도 커졌다. 정부는 공급은 물론이고 수요관리(절약)에도 만전을 기해야만 할 것이다. 비료를 과다 투입하는 관행도 이번 기회에 고쳐나가야 한다.
고유가가 촉발하는 물가 급등은 통화당국의 손발을 아예 묶어버릴 수도 있다. 곡물뿐만 아니라 비료 가격 상승까지 겹치며 밥상 물가 불안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물가 상승 압력은 중동 전쟁이 불러온 공급 충격에서 비롯됐다. 수요 억제 수단인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Inflation)’을 잡기는 어렵다. 무엇보다 기업의 자금 상황이 악화일로(惡化一路)다. 신용도 ‘AA’ 이상 우량 기업의 회사채 발행조차 어려울 정도로 신용 경색이 심각하다. 올해 1분기 회사채 발행 규모는 36조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가량 줄었다. 올해 1분기 회사채 시장의 역성장은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한 2022년 후 4년 만이다. 신용도가 높은 기업마저 회사채 시장에서 외면받는다는 것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불안이 확산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자칫 기업 연쇄 도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 신호가 아닐 수 없다. 에너지 위기는 결코 유가만의 문제가 아니다. 물가를 흔들고, 환율을 자극하고, 채권과 회사채 시장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있다. 살얼음판 위에서는 조금만 삐끗해도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십상이다. 에너지 위기가 금융 불안으로 번지는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정부와 한국은행이 긴밀히 공조하고, 선제 대응하는 체계를 갖춰야 할 때다.
혹여 만에 하나라도 반도체‘슈퍼 사이클(Super-cycle │ 장기적으로 꾸준히 상승하는 현상)’에 따른 수출 호조를 이유로 정부가 장밋빛 경제전망을 앞세우는 일만은 삼가야 한다. 삼성전자가 올해 1분기 매출 133조 원, 영업이익 57조 2,000억 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달성하며 한국 기업사를 새롭게 썼다. 국내 기업이 분기 매출 100조 원, 영업이익 50조 원을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 분기 영업이익이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 43조 8,359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영업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55%나 뛰었고 매출은 68.1% 증가했다. 그야말로 ‘어닝 서프라이즈(Earnings surprise)’라는 말이 부족할 만큼 놀라운 ‘신기원’으로 반기고 환영할 일이다.
무엇보다 반도체가 다 해냈다. 반도체를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영업이익이 50조원을 크게 웃돈 것으로 추정돼 사실상 전체 실적을 떠받쳤다. 반면 모바일·네트워크를 포함한 DX 부문은 2조 원대에 그쳤고, TV·가전은 적자 또는 소폭 흑자에 머문 것으로 보인다. 디스플레이(Display)는 1조 원 안팎, 전장(하만)은 2,000억~3,000억 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AI(인공지능) 수요 확대에 따른 HBM 등 고부가 메모리 비중 확대가 실적을 끌어 올렸단 분석이다. 무엇보다 시장 전망은 더없이 밝다. ‘AI 거품론’에도 ‘빅 테크(Big-tech)’의 데이터센터 투자가 이어지면서 수요가 올해 내내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AI로의 큰 흐름은 변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4월 1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6년 3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3월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3% 증가한 861억 3,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일 평균 수출액도 37억 4,000만 달러로 역대 최고치로 집계됐다. 올해 3월 수입은 7.5% 증가한 519억 4,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에너지 수입은 7.0% 감소했으나, 에너지 외 수입은 17.9%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듯 수출액이 수입액을 웃돌면서 올해 3월 무역수지는 전년 동월 대비 210억 1,000만 달러 증가한 257억 4,000만 달러 흑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문제는 반도체 단일 업종에만 의존하는 ‘천수답 경제’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결코 담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특히 3월 원유 도입 물량은 7,720만 배럴로 전년 대비 1.1%에 그쳐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따른 원유 수급 감소는 아직 본격화하지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고물가에 소비와 성장마저 둔화하면 이른바 경기 둔화 속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 Stagnation + Inflation)’이 현실화할 수 있는 비상 상황이다. 민생대책에서 물가안정이 우선순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는 10일 국회 처리가 예정된 26조 2,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은 물가 자극 우려가 크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불요불급(不要不急)한 현금성 지출은 최대한 줄여야만 한다.
이러한 비상한 상황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4월 6일 중동 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해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를 하루 앞당겨 연 것은 시의적절(時宜適切)했다. 이미 전쟁의 불길은 에너지 시장을 넘어 식량과 축산물, 수산물 등 전방위(全方位)로 확산일로(擴散一路)로 치닫고 있다. 식탁 물가 등 일상 소비까지 도미노(Domino)처럼 위협하는 것이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글로벌 식량 가격은 전월 대비 2.4% 올라 18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지난 4월 5일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중동 지역 요소(尿素 │ Urea) 수출 가격은 톤(t)당 670달러로 전달 대비 38.1% 올랐으며, 작년보다 172.3% 상승했다. 지난달 세계 질소 비료 가격도 전달보다 35.2%, 작년보다 168.6% 올랐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비료 대란(大亂)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세계 요소 공급량의 30%를 담당한다. 액화천연가스(LNG)를 만드는 과정에서 나오는 요소 가격이 폭등하면서 글로벌 곡물 생산 기반을 뒤흔든다. 특히‘골드만삭스(Goldman Sachs)’는 “비료는 곡물 가격의 20%를 차지한다.”라며 봄철 파종기의 비료 부족이 곡물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한 데 이어 “비료 공급 감소로 (농가의) 비료 사용이 지연되면서 곡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농부들도 옥수수처럼 비료를 많이 쓰는 작물에서 비료를 적게 쓰는 콩 등의 작물로 전환하는 점도 곡물 가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했다. 국내 축산물 가격 역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사료용 곡물의 95%를 수입에 의존하는 취약성이 드러난다. 기름값 부담으로 출어를 꺼리면서 ‘피시 인플레이션(Fishflation:수산물 가격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까지 고개를 든다. 밥상 물가 전반이 들썩이는 이른바 특히 에너지 가격 강세가 농업 생산비 증가로 이어지는‘애그플레이션(Agflation │ 곡물 가격상승으로 인한 물가 상승)’의 전형적 전개가 아닐 수 없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2%로 낮게 나타난 것은 일시적 착시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농산물 가격 하락이 물가를 눌러놓았지만, 유가 급등은 시차를 두고 반영된다. 주요 8개 글로벌 투자은행이 올해 한국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4%로 올리면서 “3%를 웃돌 수 있다”라고도 경고한 이유다. 중동 정세는 통제할 수 없는 그야말로 외생변수(外生變數 │ Exogenous Variables)다. 하지만 피해는 어떻게 대비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유류세 인하나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같은 단기 처방만으로 복합적 공급망 충격을 감당하기는 어렵다. 대체 공급선(供給線) 확보와 전략 비축 물량 확대, 수입선 다변화는 미룰 수 없는 당면 과제다. 기업의 생산 기반이 흔들리면 물가 불안이 더욱 증폭되는 만큼 피해 업종에 대한 신속한 지원부터 서둘러야만 한다. 작금의 물가 충격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전이되지 않도록 가용(可用)이 가능한 모든 전략을 총 집주(集注)하여 민생 안정 총력전(總力戰)이 당장 화급한 최우선의 급선무(急先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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