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민주주의 위협받는다

    기고 / 시민일보 / 2004-12-15 20:4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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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 시 민 국회의원
    {ILINK:1} 4.15 총선이 끝난 직후 열린 텔레비전 토론에서 17대 국회는 예전과 달라질 것이라는 다른 토론자들의 기대 섞인 전망을 들었을 때, 저는 너무 큰 기대는 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초선의원이 60%가 넘는다고 해서,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회의 문화가 갑자기 달라질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요? 처음부터 가슴 한 구석에 맴돌던 불안감이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열린우리당에 과반수 의석을 주었는데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드높습니다. ‘봉숭아 학당’을 방불케 하는 국회 꼴을 보면 당연히 그런 비난이 나올 만합니다. 국회가 이 모양인 것은 주로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저는 분석합니다. 첫째는 한나라당의 규칙 파괴행위이고 둘째는 열린우리당의 오합지졸 행태입니다.
    지난 주 의원총회에서 임종인 의원이 정확히 지적하신 것처럼,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에 승복하면서도 소수가 다수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다수의 지배라는 민주주의 일반원리를 부정합니다. 자기네가 합의해 주기 싫은 법안에 대해서는 토론할 기회조차 원천봉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수파인 한나라당이 동의하지 않는 법안을 다수파인 우리당이 비교섭단체 의원들과 함께 표결 처리하는 경우, 그것은 모두 날치기라는 것이 한나라당의 주장입니다. 이럴 바에는 도대체 뭐 하러 그 많은 돈과 정력을 소모해 가면서 선거를 한다는 말입니까. 4년마다 한 번씩 다수파와 소수파를 나누어줌으로써 주어진 임기 동안 다수파가 소신껏 국정을 이끌도록 하는 것이 선거의 목적이 아닙니까.

    우리당은 국가보안법 개폐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발언할 기회를 충분히 보장합니다. 국가보안법을 존치하고 싶으면 폐지안에 대해 반대토론을 하면 됩니다. 폐지 대신 개정을 하고 싶다면 개정안을 제출해 그 취지를 주장하면 됩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은 어떤 대안도 발의하지 않은 채 무작정 법사위 회의장을 불법 점거해 자기네가 반대하는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못하도록 국회 운영을 완전히 마비시켜 놓았습니다. 만약 국가보안법 폐지가 그토록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면 폐지 후 형법보완을 당론으로 정한 우리당과 완전폐지법안을 낸 민주노동당에 대해 국민들이 정치적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국가보안법 존치를 주장하는 한나라당의 주장이 옳았다고 현실이 증명한다면 한나라당은 다음 선거에서 이겨 다시 다수파의 위상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한나라당의 불법적인 국회 의사진행 방해 행위는 이미 관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었습니다. 저는 이제 국회의장이 나서서 한나라당의 불법행위 때문에 법사위에서 지체되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법안과 형법개정안, 그리고 다른 민생경제 법안과 예산안을 모두 본회의에 직권 상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라당의 행위는 원내 소수정파가 다수파의 횡포에 대항하는 행위로서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지 못합니다. ‘다수의 지배에 승복하면서 소수가 다수가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민주주의 기본규칙 그 자체를 파괴하는 정치적 야만행위를 더는 용납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원내에만 한정해서 본다면 지금 열린우리당은 질서가 없는 정당입니다. 과거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면서 국회의원 공천을 비롯한 생사여탈권을 행사한 것은 큰 잘못입니다. 그래서 대통령과 우리당은 당헌에 따라 당정을 완전히 분리했습니다. 의원들은 이제 대통령의 통제를 받는 대신 일차적으로 당원의 통제를 받아야 하고 나아가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당의 당헌당규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국민에게 평가받기에 앞서 당원들의 지속적인 평가와 통제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직무 수행이 불성실하거나 당의 정강정책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행위를 할 경우, 그 사실이 당원들 앞에 분명하게 드러나 차기 국회의원 후보 경선에서 당원의 평가와 심판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 국회의원이 우리당에 적합한 사람인지, 능력이 충분한지, 성실하게 열심히 의정활동을 했는지, 당원들이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당 당원들은 언론보도를 제외하면 우리당의 국회의원들이 무슨 일을 어떻게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같은 당에 속한 당원이고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믿거라 하는 건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믿음을 지속적으로 키워나가려면 국회의원 개개인에 대한 활동 정보 공개와 평가를 통한 당원의 통제 또한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의 판단입니다.

    대의와 명분이 실종된 가운데 누구의 평가와 통제도 받지 않는 국회의원들이 모든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한다면 그 정당은 제대로 된 정당이라 하기 어렵습니다. 그런 정당은 정당이라기보다는 직업정치인들이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임시적으로 만든 선거연합이라고 하는 편이 차라리 더 정확합니다.

    우리당은 선거연합 단계를 벗어나 제대로 된 정당으로 진화하기 위해 많은 내부적 진통을 겪는 중입니다. 개성과 개인적 경험과 살아오면서 학습한 분야와 내용이 많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저런 내부 분란과 갈등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당 국회의원들은 지난 반 년 동안의 집단적 경험과 학습을 통해 점차 이념적 정서적 거리를 좁혀나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빠른 속도로 진화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보시고 너무 성급하게 우리당에 대한 기대를 접지는 말아주실 것을 당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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