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慷慨赴死易 從容就義難’

    기고 / 시민일보 / 2005-01-09 20:5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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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 희 상 (국회의원)
    {ILINK:1} 평소 ‘국민과 동행(同行)하는 정치’를 꿈꾸어온 저는 지난 한해 국민의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를 이뤄내지 못한 것에 대해 소위 중진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고 참담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개혁에 대한 열망을 담아 출범한 17대 국회가 첫 해부터 국민 여러분을 실망시키고 비판을 받게 된 데 대해서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심정입니다. 국민을 통합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해야 할 국회가 사회적 갈등의 중재자이기를 포기한 것에 대해 깊은 책임을 느낍니다.

    지난 연말까지 4대 법안 처리를 두고 여야가 벌인 힘겨루기에 국민은 도리질 치고 있습니다. 강행처리를 통해서라도 국보법 등 4대 법안을 조속히 처리하라는 개혁진영과 국보법 사수에 모든 것을 건 듯이 행동하는 보수진영의 대립으로 국론은 심각하게 분열되고 있습니다. 여야간, 개혁-보수간에 벌어지고 있는 대립과 갈등은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위태로운 모습입니다. 민생경제와 북핵문제 등 어려운 현안들을 슬기롭게 풀어내고 통합과 화해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솔로몬의 지혜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옛날 중국 송나라 때 사방득(謝枋得)이 쓴 각빙서(聘書)라는 책에 ‘慷慨赴死易 從容就義難’(강개부사이 종용취의난)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분을 참지 못해 나아가 죽기는 쉬우나 조용히 뜻을 이루기는 어렵다’는 뜻이겠지요. 저는 요즘 지난 한 해 동안의 정치를 되돌아보면서 이 말을 조용히 되새겨 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개혁을 하고 있으며 이미 개혁은 시대의 소명이 돼 있습니다. 개혁은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국가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인 것입니다. 개혁하는 국가와 정부는 살아남지만 개혁에 실패한 국가와 정부는 존립할 수 없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우리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한 이후 각종 개혁작업에 주력했지만 국민으로부터 만족할 만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저는 다음의 두가지 때문에 이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생각합니다. 우선은 개혁을 추진하는 주체세력이 개혁의 어젠다를 독식했다고 생각하는 선민의식에 도취해 국민을 설득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아집과 독선에 빠진 점이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입니다. 고도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사안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사고만으로 재단하는 것은 위험한 것입니다. 이는 합리적인 개혁에 동참할 수 있는 중도적이거나 온건한 보수층을 반개혁 세력으로 몰아가서 개혁진영에서 이탈하게 만듭니다. 국민의 40%에 해당하는 중도세력을 반개혁 진영에 넘기면 개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째는 개혁과 혁명을 혼동하고 있는 점입니다. 혁명은 반대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쾌도난마처럼 원칙을 강요할 수 있지만 개혁은 반대세력과 대화하면서 원칙을 관철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과 전술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저는 17대 국회가 혁명적인 개혁을 해야 한다는 ‘혁명적 역할론’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혁명 국회’가 아니라 ‘혁명적 국회’가 돼야 한다는 것은 혁명을 하듯이 전방위적인 개혁을 하더라도 민주적인 절차를 지키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정치가와 사상가’, ‘정치가와 정객’은 다른 것입니다. 사상가는 서생(書生)적 문제의식만 있으면 되고, 정객은 상인적 현실감각만 갖추면 되지만 정치가는 서생적인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공유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택하고,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제도입니다. 생각이 다른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공존을 모색하는 정치, 그것이 민주정치인 것입니다. 나를 위해 상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제로섬의 정치’는 더 이상 국민에게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집권여당입니다. 그것도 해방이후 최초로 개혁세력이 단독 과반여당을 구성한 강력한 여당입니다. 야당이 아니고 여당이기 때문에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것, 즉 생산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국가경영의 책임을 진 집권여당의 경우,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것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보다 더욱 나쁜 것은 집권여당이 책임 문제로 지리멸렬해지는 것입니다. 일찍이 2500여년 전 공자는 정치의 공리를 ‘兵食信’(병식신)과 ‘無信不立’(무신불립)이라고 했습니다. 민생과 신뢰의 정치를 설파한 말씀입니다. 모든 것을 얻어내려고 욕심을 부리다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개혁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관철할 수 있는 전략전술을 겸비해야 합니다. 아무런 전략도 없이 상대방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다 아무 것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무능과 비겁의 정치인 것입니다. 지난해 4대 법안의 처리 과정에서 우리는 유연한 대야 전략전술을 겸비한 합리적 원칙주의자의 필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지난 한해는 ‘黨同伐異(당동벌이)의 해’였습니다. 서로가 무리를 지어 생각이 다른 세력을 공격하는 것으로 한 해를 지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여야가 자기 말만 일방적으로 떠들어 대고 상대방의 존재를 무시하는 ‘사오정 정치’도 넘쳐났습니다.

    그러나 해방 60주년이 되는 올해는 대동단결의 한 해가 되고 국민화합과 통합의 정치가 이뤄지는 한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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