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추억, 그리고 독도

    기고 / 시민일보 / 2005-04-28 18: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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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영춘 국회의원
    {ILINK:1} 어렸을 때의 추억담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같은 동네에 사는 동급생 중에 싸움꾼 친구가 하나 있었다.
    덩치가 크진 않았지만 워낙 독종 소리를 듣는 친구라 또래들은 아무도 그와 부딪치려고 하지 않았다.
    힘으로 안 되면 짱돌로라도 끝장을 보는 식으로 온 동네에 악명이 자자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불운이 나에게 닥쳐왔다.

    그날따라 그 친구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평소 양순하기로 호가 난 나에게 학교에서 시비를 걸어왔다.
    아무 이유 없는 괴롭힘이었지만 나는 피했다.

    그에 대한 두려움으로 회피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집요하게도 학교가 파한 뒤 동네에 돌아와서까지 계속 시비를 걸고 괴롭혔다.

    그와 잘 어울려 놀지 않았던 내가 고까운 끝에 기를 죽여 놓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선택에 직면했다.
    수모를 감내하고 안전을 도모할 것인지,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명예롭게 싸울 것인지의 갈림길이었다.
    실전경험은 없었지만 다행히 나는 5학년 때 1년 정도 합기도 도장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래서 한판 붙어보자는 쪽으로 부추기는 내면의 유혹이 생길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오래가면 절대 불리하다는 생각을 했다.
    초장에 상대의 전의를 상실하게 만들어야지 그렇지 못할 경우 내 머리는 짱돌에 피투성이가 될 판이었다.
    나의 반응을 눈치껏 살펴보고 있는 다른 친구들 틈바구니에서 고민 고민 끝에 이윽고 나는 굴욕보다는 전사를 선택했다.
    그러면서 한방에 끝내야한다는 생각만 했다.

    싸움이 시작되고 그 친구가 먼저 선공을 해오는 순간은 찰나였지만 내게는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그 영원 같은 시간동안 나는 주먹을 움켜쥐고 “한방에, 한방에”하고 되 뇌이면서 젖 먹던 힘까지 모두 쥐어짜 주먹에 실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의 공격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이고 자식의 면상이 대문짝만하게 열려 보이는 게 아닌가?

    때문에 그의 공격을 멋지게 피하면서 대신 내 준비된 주먹을 그의 면상에 제대로 내리꽂을 수 있었다.
    그는 벌러덩 뒤로 넘어갔고 코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아픔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상대도 되지 않을 것 같은 내게 제대로 얻어맞은 충격 때문이었는지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게 누워 있었다.

    이 때다 싶어 나는 손을 털며 말했다. “너 앞으로 까불지 마”
    그리고는 천천히-마음속으로는 엄청 급하게- 친구들의 호위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그 친구의 엄마가 항의 차 우리 집을 방문하여 사고를 알게 된 우리 엄마가 위로 겸 안티프라민을 사들고 그 친구 집을 다녀왔다.

    엄마는 무슨 애를 그렇게 팼냐고 힐난했지만 나는 내심 뿌듯했다.
    운 좋게도 내 주먹은 그의 코와 눈 사이를 적중시켰던 것 같았다.

    단 한방이었지만 그의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싸움의 여파는 컸다.

    나는 동네에서 건드려서는 안 되는 아이가 되어 편하게 남은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
    그의 보복이 두려웠지만 그는 나와의 싸움 이후 거짓말처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이후 일체 싸움하는 그를 볼 수 없었고 공부벌레가 되다시피 했다.
    결과적으로 그도 이기는 싸움을 한 셈이 되었다.
    나도 물론 그 이후 싸움을 해 본 적이 없다.

    요즘 독도문제에 대한 분노의 여론이 많이 수그러든 것 같다.

    사실 여론이 한참 들끓었을 때도 일본정부나 그 국민들이 우리를 두려워하진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라를 뺏길 때에도 우리는 일본에 저항다운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었다.
    힘이 약해도 피를 흘릴 각오로 옹골차게 대드는 상대라야 강자가 윽박지르기를 못하지 않겠는가?
    지금의 우리는 자존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나 자문해 볼 필요가 있다.

    훗날 독도를 둘러싸고 해전, 공중전이 벌어졌을 경우 과연 우리 전력으로 일본을 이길 수 있겠는가?
    무력으로 못이길 경우 경제적 손실과 피해를 감수하고라도 일본에 대한 장기적인 외교적 타격을 가할 만큼 우리 국민들은 정신적으로 무장되어 있는가?

    최근의 정세 변화와 주변국의 동향은 우리 안보의 잠재 주적이 더 이상 북한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우리로서는 근본적인 고민과 성찰을 해야 할 문제이다.

    실력을 기르고 나라를 발전시키면서도 한편 내가 죽을 각오로 힘센 상대에 대들 수 있는 자존심과 결사의 정신이 작은 나라 대한민국을 지켜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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