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의 강변

    기고 / 시민일보 / 2005-06-14 20: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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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 국회의원
    {ILINK:1} 행담도 의혹사건으로 대통령 자문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이 도마에 오르자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지난 1일 ‘위원회가 희망’이라며 강변하고 나섰다. 현 정부의 ‘위원회 시스템’을 사실상 통괄하는 책임자로서 빗발치는 여론의 예봉을 벗어나고 내부 구성원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시쳇말로 총대를 메고 나선 점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항변을 하건 반박을 하건 모름지기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논지를 펼쳐야 ‘궤변’이라는 쓴 소리도 듣지 않을 테고, 시중의 악화된 여론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정우 위원장의 글을 읽어보면 어느 언론인의 지적처럼 사회의 일반적 통념에 대해 ‘그게 뭐가 어때서’식의 역공을 위한 역공, 반론을 위한 반론만 눈에 띌 뿐 문제에 대한 심각한 반성이나 변화를 모색하기 위한 진지한 실천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

    실로 유감이다.
    이 위원장은 ‘위원회 과잉’ 이라는 세간의 비판에 대해 현 정부 들어 위원회가 크게 늘지도 않았고, 아울러 국고도 축내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지난 2년 동안 자문회의라고 기껏 한두번밖에 열리지 않은 위원회가 전체 위원회 358곳 가운데 1/3을 넘고, 아예 한번도 회의를 하지 않은 위원회가 지금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그런 데다 일부 위원회들은 기능이나 역할이 중복되어 예산 낭비를 초래한다는 감사원의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 많은 수의 자문위원회들이 어떤 행정적 필요성과 법적 근거에서 만들어졌는지도 모호할뿐더러 이처럼 만들어놓고서도 제대로 활동조차 하지 않으니 많은 국민들이 ‘위원회 공화국’으로 인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 위원장은 이어서 참여정부는 부처와 위원회가 종횡으로 얽힌 매트릭스 정부라고 칭하면서, 위원회가 屋上屋(옥상옥) 이니 越權(월권)이니 하는 비판을 오히려 ‘疏通(소통)’이라는 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이 위원장의 독특한 표현인 ‘狂風(광풍)의 눈’이 된 동북아시대위원회는 매트릭스 조직의 특성인 ‘절충’이 잘 안 돼서 위원장이 직접 나서 민간사업인 행담도 개발에 깊이 관여하고, 국방부의 잠수함 통신소 공사의 중단을 요구한 것인가.
    이것이 월권이 아니고 어찌해서 소통이란 말인가.

    참으로 특이한 시각이고 자의적 언어선택이다. ‘책임 전가’를 참으로 교묘하게 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한마디를 덧붙이자. 매트릭스 정부는 기존 부처 조직이 유기적으로 운영될 때 가능한 것이지 위원회를 마구 설치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했으면 한다. 대통령 직속의 자문위원회가 막강한 힘을 행사하다 보니 법률상 정책의 수립과 집행권을 가진 행정부처들이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자조 섞인 말들이 정부 청사 밖으로 흘러나오는 연유를 이참에 제대로 점검해보기 바란다.
    ‘아마추어가 희망’이라는 대목에 이르면 그야말로 啞然失色(아연실색)할 노릇이다.

    물론 이 문구만 따로 떼서 놓고 보면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니다. ‘파란 떡잎’이 많아야 나무가 잘 자랄 것을 예견할 수 있듯이 어느 사회든 미완의 大器(대기), 비록 지금은 서툴지만 앞으로 장래성이 있을 법한 아마추어가 많아야 그 사회에 희망이 있음은 자명하다.

    그런데 4700만 국민들의 현재 삶을 책임지고 있는 정부 중심부가 일이 서툴고 상황 대처도 미숙한 아마추어들로 채워져 있고, 이로 인해 갖가지 물의를 빚는 것을 보면서도 “구태와 시류에 덜 물든 아마추어들이니 오히려 희망”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현 정부가 대한민국 국정운영을 동네 구멍가게 꾸리는 수준으로 보고 있지는 않을까 라는 의구심이 든다. 이쯤 되면 논리가 아니고 그야말로 궤변이다.

    漸入佳境(점입가경)인 점은 조선 중기의 사림파와 훈구파를 느닷없이 등장시켜 사림파와 자신들을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我田引水(아전인수)도 이 정도이면 옆집 논에 물 한방울 안남지 않을까 싶다. 역사에 대한 몰이해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도덕적 독선 의식이라는 현 정부의 고질적인 행태가 되살아나는 것 같아 기분이 영 씁쓸하다.

    이런 경우를 빗대 ‘교묘한 말이 자기의 나쁜 점을 꾸미기에 넉넉하다’(言足以飾非·언족이식비)는 금언이 나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적격 인사들이 참여해 월권을 일삼거나 행정부처 위에서 군림해 온 자문위원회의 폐해를 바로 잡고 아무런 기능도 하지 못하는 부실한 위원회를 차제에 정리해 나가자는 것이 어떻게 훈구파적 권위와 기득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인지 그 논리구조가 참으로 궁금하다.

    요즘 여당에서조차 청와대와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무능과 월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 이유의 대부분이 대통령 자문위원회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정우 위원장의 주장대로 부처와 위원회의 제대로 된 협력으로 백년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도 자문위원회의 폐해를 바로 잡기 위한 법과 제도의 정비가 반드시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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