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와 통합의 길

    기고 / 시민일보 / 2005-12-27 21:5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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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근 태(보건복지부 장관)
    {ILINK:1} 얼마 전에 결재를 하면서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어지간한 일에는 화를 잘 내지 않는 편입니다. 좀 모자라는 점이 있어도 믿고 맡기거나 격려하는 편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좀 화가 났습니다.
    위원회 때문이었습니다. 정부 일을 하다보면 위원회를 많이 만들게 됩니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정책의 완결성을 높이는데 위원회가 효과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위원회를 구성할 때 제가 좀 까다롭게 굽니다. 잔소리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형식적으로 구성해서는 안 된다,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을 반반으로 구성해야 한다, 듣기 싫은 소리 하는 사람이 있다고 배제해서는 안 된다 등등.
    그런데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이런 위원회가 불편하게 마련입니다. 생각이 비슷한 사람,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위원을 구성해 신속하게 정책을 결정하고 일을 진전시키고 싶은 유혹을 받기 쉽습니다.
    그날, 결재를 하면서 화를 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복지부 일을 한 지난 1년 반 동안 ‘실질적인 토론을 벌일 수 있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수도 없이 강조했는데 또 옛날 방식대로 위원회를 구성해서 결재해 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위원회를 구성해 심의한 정책은 반드시 뒤탈이 납니다. 당장은 효율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만 나중에 꼭 사고가 터집니다. 정책 결정과정에서 소외된 분들이 문제제기를 하고, 사회적인 논쟁으로 번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국 쉽게 일하려다가 시간도 더 걸리고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면에 찬반이 팽팽한 위원회를 구성하면 당장은 삐걱거리고 힘겨워 보일지 모르지만 일단 정책이 결정되고 나면 훨씬 쉽게 일을 추진할 수 있습니다. 팽팽한 토론 과정에서 모난 부분은 깎이고 부족한 부분은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정책에 대한 집행력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해집니다. 보건복지부의 특성상 위원회 구성만 잘 해도 일을 반으로 줄일 수 있습니다.
    흔히 보건복지부를 ‘지뢰밭’이라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 대형사고가 터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음 복지부 일을 시작하면서 주위에서 그런 걱정을 많이 들었습니다. 잘해야 경상이고, 잘못해서 지뢰를 밟으면 중상을 면하기 어렵다는 농담도 많이 들었습니다.
    복지부에 널려 있는 지뢰 가운데 가장 큰 지뢰는 역시 이해집단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입니다. 복지부에는 서로 이해를 달리하는 수많은 산하 단체들이 있습니다. 이런 단체의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충돌하면 타협의 여지가 없는 극단적인 충돌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의약분업을 둘러싼 분쟁이나 한약분쟁이 대표적입니다. 약대 6년제 문제를 놓고도 치열한 줄다리기가 있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보건복지부 일을 하는 동안에 큰 분쟁은 없었습니다. 조마조마한 순간은 있었지만 서로 이해하고 한발씩 양보해 큰 충돌은 피했습니다. 정말 고맙고 다행스런 일입니다.
    대신, 새로운 기풍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건강보험 수가 및 보험료 인상폭을 둘러싸고 해마다 크고 작은 충돌이 있었습니다. 공급자인 보건의료계는 수가인상을 주장하고 시민단체를 비롯한 가입자 대표들은 보험료 인상 반대를 주장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서로 평행선처럼 같은 주장만 반복하다 협상결렬을 선언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것이 당연한 일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국민의 최저생활기준을 정하는 ‘중앙생활보장심의위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여기서 정하는 기준이 ‘최저임금’의 기준이 되고, 기초생활수급권자를 정하는 기준도 되기 때문에 정부와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이 팽팽히 맞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합의’에 의해 기준이 정해진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가 복지부 일을 시작하고 나서 2년 연속으로 네 차례에 걸쳐 ‘합의’를 이뤄냈습니다. 처음에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지만 지루한 토론과정과 치열한 의견충돌을 거쳐 결국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합의’를 이뤄야 할 일이 수없이 많습니다. 삐걱거리고 있는 노사정위원회를 정상화 시키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크지만 정작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일은 어렵기는 하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인내를 갖고 추진하면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번거롭고 둔해 보이지만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이런 합의의 기풍이 우리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나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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